마흔이면 내 얼굴에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침 8시쯤 타는 7번 버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여자가 있다. 마주친다고 해도 내가 일방적으로 기억하고 관찰할 뿐이다.
나보다 한 정거장 뒤에 타는 그녀는 항상 버스에 탈 때 저돌적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얼굴은 조금 길고 흰 편이다. 부은 눈두덩이 위 미간에는 항상 주름이 잡혀 있고,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언짢아 보였다. 얼굴에 심술이 붙어 있는 것도 같다. 머리카락은 말리지 않았다. 막 감고 빗질한 상태 그대로였다.
자리에 앉으면 잠시 숨을 돌린 뒤, 가방에서 작고 동그란 부채를 꺼내 들고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한두 정거장이 지나면 다시 부채를 넣고 주변을 살폈다. 뒤에서 보면 고개를 바짝 치켜든 미어캣 같았다. 그리고 몇 정거장 뒤,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평소 자주 짓는 표정이나 마음속 감정은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쌓이고 쌓여 온 얼굴을 뒤덮고 나면, 지우기가 쉽지 않다.
타인이 보는 내 얼굴은 어떨까.
남의 눈치를 보며 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내 얼굴을 봤을 때, 내 기분이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녀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몇 번인가 한 적이 있다.
웃으면 어떤 얼굴이 될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