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콜로세움, 그리고 포로 로마노
뜨겁다.
로마에 도착한 나의 첫 소감이다.
강렬한 태양은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헬싱키 다음 여행지로 로마를 선택한 건 어쩌면 나의 실수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로마 숙소는 내가 예약한 숙소 중 최악이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에어비앤비였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도착하자마자 역시 사진에 속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해 준 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나는 4일 동안 참 잘도 지냈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도착한 로마지만 그냥 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짐을 풀고 바로 숙소에서 나왔다.
숙소 앞 테르미니역에는 무장한 경찰이 둘씩 짝을 짓고 돌아다니며 역 안팎의 사람들을 감시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역을 벗어나자 거리는 한산해졌다.
조금 걷다 보니 배가 고프기도 했고, 지금 안 먹으면 저녁때까지 못 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침 옆에 보이는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산한 길만큼 한산한 식당이었다.
로마에서 내 첫 식사는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였다. 안전한 선택이었고, 그럭저럭 먹을 만했던 무난한 결과였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관광 안내소였다. 로마 패스를 사기 위해서였고, 나는 72시간짜리로 구매했다.
그리고 콜로세움으로 갔다.
한여름의 콜로세움, 그리고 포로 로마노.
나는 살면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그곳에서 보냈다.
패스를 이용해 티켓 구매와 입장 대기 시간을 줄인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만약 그 시간을 오롯이 다 기다렸다면 나는 정말 일사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콜로세움은 사진으로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로마의 콜로세움 바로 그 현장에 있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입장할 때는 아주 오래된 야구장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관중석에 서서 경기장을 바라볼 때는 가상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콜로세움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그곳에 흐르는 공기마저 특별하게 느껴졌다.
관중석에 서서 미로 같은 경기장 지하와 맞은편 관중석을 둘러보며, 영화에서 보았던 잔혹한 유흥을 즐기는 그때의 상황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지금의 관광객을 그때의 관중처럼 관중석에 앉히고, 나는 황제의 자리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발칙한 상상.
콜로세움을 지을 당시에는 당연히 이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을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겠지? 어쩐지 입안이 씁쓸해졌다. 이유는 모른다.
콜로세움에서 나와 포로 로마노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뙤약볕이었다. 그 길을 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얼음물을 들고 내 곁으로 다가온 노점 상인은 아마 내 심정을 간파하고 왔을 것이다. 그의 손에 들린 얼음물을 보고 나는 당장 2유로를 지불했다.
여행 책자에서 본 정보가 다 였기 때문에 포로 로마노 안의 옛 흔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절감했을 뿐이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는 건 없지만 지도를 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열심히 살펴보았다.
중간쯤 갔을 때, '미리 공부하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리고 조금 어지러워졌다. 조금씩 아껴 마시던 얼음물을 다 마셨다. 다행히 근처에 물 받는 곳이 있어 미리 물도 받아 두었다. 한국이었다면 길에 있는 식수대의 물을 마시지 않았겠지만, 그곳에서는 생존을 위해 마셔야 했다.
잠시 쉬고 싶었지만 그늘을 찾으면 작은 그늘이라도 누군가가 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관광을 강행했다.
그리고 거의 끝에 도달했을 때,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들었다.
드디어 끝이다.
옛 로마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곳을 떠나는 내 마음은 후련했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늘에 앉아 쉬고 싶었다. 화끈거리는 얼굴과 팔, 다리에도 휴식을 주고 싶었다.
어디든 시원한 곳으로 가자.
나는 또 걸었다.
시원한 계절, 가이드와 함께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