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다리

by 아무

밤 열 시, 한 달만에 산책을 나갔다.

집 근처 시민 공원에 가기 위해서는 굴다리를 지나야 했는데, 그곳의 전등은 자주 고장 났다.

오늘도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짧은 굴다리 밑을 빠르게 걸어, 바로 이어진 개천가 산책로로 빠져나갔다.

공원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공원에 설치된 기구로 운동을 하는 사람, 농구 코트 옆 돌계단 관람석에 둘씩 짝지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귀가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달리는 사람, 빠르게 걷는 사람, 느리게 걷는 사람,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

그 속에 섞여 한참 동안 걸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다시 굴다리 밑을 지나야 했다.

내가 어두운 굴다리 밑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마침 지하철이 지나갔다.

그곳은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혹은 지하로 내려가는 구간이었다.

지하철은 굴다리 위를 지나가면서 강한 진동과 굉음을 일으켰고, 그 진동과 굉음으로 굴 속이 가득 찬 순간, 나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눈앞에 보이는 크고 환한 출구가 사라질 것만 같은 공포.

빠르게 걷고 있지만 출구에 닿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지금 이 어둠 속에 영영 갇혀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

눈앞의 출구를 향해 서둘러 걸었지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 현실을 형상화한 듯한 그곳.

나는 아직도 굴다리 밑을 통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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