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셜록!

런던

by 아무



7월의 런던은 화창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악명 높은 영국의 날씨는 감사하게도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윈저성을 방문했던 여행 5일 차에 한 두 방울 내린 비 말고는 보름 내내 맑고 쾌적한 날씨였다. 그날도 맑은 하늘에서 정말 몇 방울 내린 게 다였다.

완벽한 날씨만큼 나의 런던 여행은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지만 대체로 순조롭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런던이라는 도시는 내가 처음 이 여행을 계획할 때까지만 해도 여행지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심지어 친구가 런던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거긴 안 갈 거라고 상당히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어째서 보름이나 되는 시간을 런던에 할애하게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첫 장기 여행을 결심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부지런히 블로그와 유럽 여행 책자를 들여다보며 여행 일정을 짰다. 여행 책에서 소개한 유명한 어딘가를 가고, 거기서 뭘 보고, 블로거가 추천한 어디에서 뭘 사고, 이런 이상한 계획을 짜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게 무슨 여행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유명하다며 추천한 것이 아닌 내가 어딜 가고 싶은지, 무엇을 보고 싶고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그래서 우선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나 만들어보자며 서점으로 가서 여행과 관련된 책 두 권을 구매했다.

내 생애 가장 길고 의미 있는 경험이 될지도 모를 이 여행, 그 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때는 아직 계획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의욕이 넘쳤다.

두 권의 책 중 한 권에 '셜록'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 책을 읽고 깨달았다. 너무나도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시리즈를 나는 그때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유명하면 읽었다고 착각을 하거나 너무 유명해서 그 반감으로 일부러 읽지 않는다거나 너무 많은 노출로 질려버린다거나 하는 이유로 그 책을 멀리 하는 경우가 있다. 셜록은 첫 번째와 세 번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그 책을 읽은 뒤로 나는 갑자기 독서 욕구가 치솟았다. 내 책장에는 다행히 셜록 시리즈가 세트로 완비되어 있었다. 언젠가 내가 충동적으로 구매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나는 당장 책장에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주홍색 연구를 뽑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권의 책 중 서너 권을 읽은 뒤에야 영국 드라마 '셜록'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드라마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 회차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에 정주행을 하고 말았다. 여태 그렇게 몰입해서 본 드라마가 없었다. 셜록은 그렇게 내게 스며들었다.

갑자기 셜록의 매력에 빠져 첫 번째로 여행할 도시를 런던으로 확정 짓고 나니,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까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정리가 되는 듯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여행.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그게 뭐가 됐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꼭 알차지 않아도 되고, 몰라도 되고, 실수를 하든, 후회를 하든, 즐겁고 건강하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 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 후, 여행 계획의 큰 줄기는 빠르게 결정되었다.

내가 런던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영국식 아침 식사였다. 특히 드라마 '셜록'에 나왔던 'speedy's 샌드위치'에서 먹어 보고 싶었다.

런던에서 처음 맞이한 아침, 나는 speedy's 샌드위치로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마침 숙소와 가까웠다. 메뉴에는 셜록 세트도 있었지만 역시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주문했다. 토스트, 달걀 프라이, 소시지, 베이컨, 고기 패티, 구운 양파, 감자튀김 그리고 카푸치노. 참으로 든든한 아침식사였다. 메뉴 구성만 봐도 특별하게 맛있다기보다는 누구나 아는 맛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날 공항에서 입국 심사 줄에 두 시간 넘게 끼여 있다가 숙소에 늦게 도착해서 슈퍼마켓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운 뒤였기 때문에, 제법 맛있었다.

그리고 셜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셜록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바로 '베이커가 221B 번지'

실제로는 없는 주소지만 현재 구글 지도로 이 주소를 검색하면 셜록 홈즈 박물관을 표시해준다. 셜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검색해보지 않았을까.

박물관 앞에 도착한 나는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역시 셜록의 팬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인 걸까. 박물관 입구에 선 줄이 상당히 길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입장료는 무려 15파운드였지만.

박물관이라고는 해도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크지는 않았다. 내부는 소설 속 셜록의 집을 그대로 꾸며 놓았다. 계단이나 다른 층에는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해 놓기도 했다. 나는 곧 귀가할 셜록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집 안을 둘러보기도 하고 사건의 단서를 찾는 느낌으로 날카롭게 살펴보기도 하며 최대한 그곳을 즐겼다. 그러나 명성과 입장료에 비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보고 싶었던 장소에 직접 가서 보고 느꼈으므로 실망이나 후회는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 박물관에 대해 물어본다면, 한 번은 가 볼만 하니 원한다면 직접 가서 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만족을 하든 실망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다. 가보지 않고,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여행이든 인생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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