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밭에 두고 온 미련

오베르 쉬르 우아즈

by 아무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은 아주 작았다.

기차에서 내린 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하도를 건너야 했는데, 그 짧은 지하 통로 양 벽면과 천장이 온통 고흐 풍의 벽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벌써부터 고흐인가?'

나는 작은 역사 안으로 들어가 돌아가는 기차 시간부터 확인했다. 시간표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역사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눈이 부셨다.

우선 큰길을 따라 걸었다. 라부 여인숙과 시청이 그 길에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한산했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은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마을 사람 같았다.

먼저 시청을 발견했다. 고흐가 그린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도록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얀 벽과 파란 지붕의 시청 건물이 그림과 다름없이 우뚝 서 있었다.

맞은편으로 라부 여인숙도 보였다. 조심히 길을 건넜다. 잠시 그 앞을 서성이다 여인숙 건물 옆 붉은 철문을 지나 건물 뒤로 들어갔다.

마침 한 가족이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올라가 그 가족 옆에 서서 설명을 들었다. 설명은 당연히 영어였고,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설명이 끝나자 직원은 그 가족을 여인숙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내게 표가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저기서 표를 사야 한다며 팔을 뻗어 매표소를 가리켰다.

"Ah, OK!"

조금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계단을 내려가 그녀가 가리킨 매표소로 서둘러 걸어갔다.

내가 곧바로 표를 사들고 돌아오자 그녀는 설명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영상실이 나왔다. 먼저 들어간 가족이 상영 중인 영상을 보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과 편지 등을 이용해 만든 영상이었다. 나도 한쪽 구석에 앉아 가만히 영상을 보았다. 영상이 끝나고 가족이 입구 반대편 문으로 나갔다. 나는 영상의 앞부분을 보기 위해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다시 영상이 시작되었다. 그리 길지 않았다. 10분 남짓.

영상이 끝나고 나도 그 가족이 나갔던 입구 반대편 문으로 나갔다.

작은 방이 나왔다.

가족은 이미 여인숙을 떠난 듯했다.

정말 작고 별 것 없는 방이었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철제 침대(고흐가 사용한 침대라고 한다)와 의자가 다였다.

그리고 옆에 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방이 고흐가 마지막을 보낸 방이었다.

기형적인 방에는 언젠가 그가 앉았을지도 모를 의자만 하나 덩그러니 놓였고, 비스듬한 천장에 난 작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그러나 방은 한낮에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뒤돌아 방에서 나왔을 때, 계단을 마주했다. 고흐의 고독을 고스란히 흡수한 듯 어둡고 쓸쓸해 보이는 나선형의 좁은 계단이었다.

나는 낡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와 밝고 깨끗한 2층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엽서 두 장을 샀다. 라부 여인숙 1층에 있는 레스토랑 내부 전경과 계단이 찍힌 사진엽서였다.(원래 여행지에서 다른 기념품 대신 엽서를 사곤 하는데,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뒤로는 내 취향보다 교과서적으로 잘 찍은 사진엽서를 강박적으로 사기 시작했다.)

뒷맛이 씁쓸한 여인숙에서 나와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나는 오베르 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 내부는 디지털 형식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관람객은 한 사람, 나뿐이었다. 조용하고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어 좋았지만, 역시 성 안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쓸쓸하고 무서웠다. 전시를 휘리릭 훑어보고 정원으로 나왔다. 관목을 기하학적인 무늬로 미로처럼 깎아 장식한 프랑스다운 정원이었다.

관목 가운데서 분수가 물을 내뿜는 모습이 지극히 한가로워 보였다.

나는 다시 역 근처로 돌아왔다. 허름한 빵집에서 끼니로 때울 빵 하나를 샀다. 그 빵을 들고 맞은편 반 고흐 공원으로 갔다. 아주 작은 공원이었다. 비쩍 마른 고흐의 청동상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그럭저럭 먹을 만한 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저녁은 풍족하게 먹겠어' 하고 다짐하며 대충 허기만 달래 주었다.

빵과 휴식으로 기력을 회복한 뒤 오베르 교회로 갔다. 교회에도 고흐의 그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가 그린 오베르 교회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괴한 느낌을 받았다. 왜곡돼 보이는 공간과 검푸른 하늘, 교회 앞을 지나가는 여인. 어셔 가의 저택처럼 교회 지하에서 누군가의 절규가 들려올 것만 같다. 그러나 실제로 본 교회의 모습은 단아하지만 위엄이 서려 있었다. 아직 밝은 낮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밤이 되면 고흐의 그림처럼 조금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변할지도.

교회를 안팎으로 휘 둘러본 뒤, 교회 앞에 난 길을 왼편으로 따라가 보니 밀밭이 나왔다. 폭이 좁은 오솔길 양쪽으로 풀이 거의 내 키만큼 무성했다. 이 풀 너머로 아직 수확하지 않은 누런 밀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람도 불지 않아 그곳은 한없이 고요했다. 화가로서 격렬하게 고뇌하던 고흐의 눈에는 이 밀밭이 어떻게 보였을까. 내 눈에는 그저 평온해 보였다.

이 밀밭 끝에 고흐가 그림을 그렸다는 장소가 있었다. 까마득해 보였다. 실제로 내가 생각한 전체 밀밭의 끝이 아니라 구획이 나뉘는 이 밭과 이 밭 너머 밭 사이에 난 길까지만 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 길이 보이지 않아 착각을 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밀밭을 눈에 담고 발길을 돌렸다. 고흐와 같은 밀밭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때는 이 밀밭 너머에 고흐와 테오의 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빨리 포기할 수 있었다.

다시 교회 앞을 지나 마을의 골목길로 들어갔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골목길. 전체적으로 아담하고 귀여운 인상을 주는 마을이었다. 천천히 골목길을 걷다 보니 어쩐지 마음이 포근해졌다.

나는 느릿느릿 오베르의 작은 역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역사 안 벤치에 앉아 기차가 오길 기다리며 몸 안에 쌓인 열을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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