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느 별에서 왔니? 3

by 아무





쉬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소소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바로 이틀 뒤에 자격증 시험을 쳐야 했기 때문이다.

한 달쯤 전, 어느 날 아침이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어.’

알람을 듣고 눈을 뜨자마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 걸터앉아 반쯤 감긴 눈으로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그리고 연초에 계획만 했던 자격증 시험을 찾아 곧바로 등록했다.

그 시험이 벌써 이틀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며칠 공부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빠른 포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경험 삼아 치는 거야.’

이런 핑계를 머리에 새기고 이번에는 합격이 아니라 경험 쌓기를 목표로 반은 포기한 채 시험을 준비했다.

태블릿으로 한참 강의를 듣고 있는데 옆에 놓인 휴대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대기 화면 한쪽 구석에 익숙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잠금을 해제하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점장 도도다.

피피에게 온 메시지를 그대로 복사해서 보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내일 오기로 했어. 참고해.’

소소는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제 심경’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심경? 무슨 심경?

소소는 도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로는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점장님…….”

“…… 그냥 오라고 했어.”

“하…….”

“위에서 직장 내 괴롭힘 들먹이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데 어떡하냐, 그냥 받아줘야지. 매일 문자 보내라고 해서 내가 문자도 매일 보냈어. 온다고 하면 받아주고 안 온다고 하면 정리하자더라. 근데 온다고 하네.”

“부장도, 그 사람도 참 대단하네요.”

“그렇지? 참 대단하지. 부장 말대로 우리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한 번 자알~ 지내보자. 그 방법밖에 없어."

도도와 소소는 서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림을 감지했다.

잠시 침묵.

“내일 보자.”

“네…….”

전화를 끊고 소소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화창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다.

교회 십자가 위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봤다.

단단히 봉해 두었던 감정에 바늘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으로 분노가 새어 나온다.

실처럼 가느다란 분노가 맹렬한 기세로 뻗어 나온다.

어느새 저 뭉게구름처럼 몽실몽실 뭉쳤다.

뱃속에서 그것이 꿈틀거린다.

분노가 들끓는다.

소소가 이렇게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느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뭘 해도 되는 놈은 된다 이건가.

인생 참 쉽게 사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채찍만 주고, 그렇게 제멋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당근을 주다니.

연필을 잡고 있던 손이 살짝 떨렸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바뀐 매니저 인증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이 인증 시험을 통과해야 진급할 수 있다.

소소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한 번에 통과하거나 운이 나쁘면 두 번만에 합격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피피는 이번이 세 번째였다.

비대면이니 오픈북 테스트나 다름없는데 왜 두 번이나 떨어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며 답답해하던 도도가 소소에게 피피를 도와주라고 지시 아닌 지시를 내렸다.

도도 역시 그의 시험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한가한 시간에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 책도 도도가 몇 번이나 말한 끝에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가져왔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천하태평이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외출한 책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매장 사무실에 터를 잡았다.

지시가 됐건 부탁이 됐건 도와주라는 말을 들은 이상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소소는 사무실 컴퓨터 본체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어째선지 옆에서 지켜보는 도도와 소소만 애가 탔다.

시험 당일, 피피는 출근하자마자 도도에게 말했다.

“저 시험 치는 거 도와주셔야 해요.”

맡겨놓은 듯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태도에 소소는 적잖이 언짢았다.

그러나 소소는 결국 피피 옆에 앉아 함께 시험을 쳤다.

그리고 다행히도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이 일 이 떠오르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역시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게 아닌데.

책을 덮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맥이 빠지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창 한쪽 귀퉁이로 새털구름이 슬며시 다가온다.

후우.

그래, 넌 그렇게 살아.

너 따위에 내 감정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어.

이제껏 감정이 새어 나오던 작은 구멍을 찾아 다시 단단히 틀어막았다.

지난 며칠간의 마음고생과 앞으로 남은 마음고생을 보듬어 줄 사람은 자신뿐이란 걸 잘 알기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을 아예 끊어 버렸다.

주방으로 가서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셨다.

소소는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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