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느 별에서 왔니? 4

by 아무






다시 그와 마주한 소소는 의외로 쉽게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진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자신의 감정 컨트롤 능력이 이토록 뛰어날 줄이야, 스스로가 대견하고 감탄스러웠다.

피피는 다시 출근한 첫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듯 보였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도도와 소소는 그가 무단으로 결근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도도가 물었다.

“출근 안 한 이유가 뭐야?”

“아, 그게……, 실은…….”

“응.”

“여자 친구랑 헤어져서…….”

“그래,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

“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더니 정신이 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도와 소소는 그 이유를 듣고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매일 보낸 도도의 문자에 감동을 받았다고도 했다.

감동은 받았으나 답장은 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푹 쉬고 일하러 가지 뭐,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출근 첫날은 자신이 권고사직되지 않은 것에 무척 감사했다.

감사함은 첫날뿐이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역시는 역시다.

그의 지각은 이튿날부터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래요.”

“맞다, 맞아.”

도도가 체념한 듯 웃으며 맞장구쳤다

피피는 도도와 소소의 내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타벅스의 비싼 커피를 사 와서 뇌물로 바쳤다.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한 여파, 도도와 소소가 받는 스트레스를 그것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그가 지각하는 날마다 커피를 사주는 이유였다.

그것으로 자신의 지각 마일리지를 초기화시켰다.

물론 피피 머릿속에서만 초기화되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그래, 커피나 마시자.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사무실 의자에 앉아 공동 메일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인사 발령 메일에서 의외의 이름을 발견하고 소소는 화가 폭발할 위기에 처했다.

승진자 명단 제일 아래에 피피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2주쯤 전이었다.

사무실 앞을 지나다 부장 윌리와 도도가 나누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저에게 결정권이 있다면 저는 절대 승진시키지 않을 겁니다.”

“이유가 뭐야?”

“일단 일을 못합니다.”

“그리고.”

“근태가 안 좋습니다. 아시잖습니까.”

“근데 승진 안 시켜주면 그만둔다거나 하지 않겠어?”

“그만두면 그만두는 거죠.”

“당장 사람이 없지 않나, 이 사람아.”

“부장님 알아서 하십시오.”

“나도 골치 아파 죽겠어.”

그때 두 사람의 대화가 귓전을 맴돌았다.

소소는 당장 휴대폰 꺼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너무 화가 나. 내일 시험 끝나고 나랑 놀아 줘.’

내일은 자격증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어떻게든 이 응어리를 풀고 싶었다.

친구에게 곧바로 답장이 왔다.

‘그래, 우리 맛있는 거 먹으면서 풀자.’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흔쾌히 승낙해준 친구가 고마웠다.

그 덕에 소소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돼.

못 견딜 것 같은 때까지 버티지 말자.

그래, 나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있어.

내 머릿속에도 꽃밭을 만들어 보자.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드넓은 벌판에 갖가지 꽃이 피었다.

벚꽃, 비비추, 양귀비, 장미, 해바라기, 유채꽃, 달리아, 수선화, 라벤더, 튤립, 블루베리, 무궁화, 동백…….

좋아하는 꽃, 유명한 꽃, 이름은 모르지만 길가나 산책로에서 많이 본 꽃들까지 모조리 떠올렸다.

개화시기는 상관없다.

어떤 꽃이든 한데 모여 필 수 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형형색색 다채로운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상쾌하고 향긋한 파스텔톤 꽃향기가 소소 주위를 맴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눈을 뜬 뒤, 다시 현실과 마주했다.

현실은 변함이 없지만 소소의 눈에 비친 현실은 어딘가 조금 달라졌다.


다음 날, 소소는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시험을 마치고 시험장에서 나왔을 때, 근처 작은 공터에 플리마켓이 열려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어르신들이 판매하는 고구마 말랭이를 세 봉지나 구매해 버렸다.

가방이 무거워졌다.

친구는 머지않아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곧바로 저녁 메뉴를 정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소소는 참지 못하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가게에 도착했을 때, 대기가 길어 기다릴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메뉴부터 가게까지 다시 정하기가 번거로워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소소는 배가 고팠지만 다른 가게를 찾는 것보다 이야기가 더 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차례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대화했다.

소소의 일방적인 하소연이 대부분이었지만 친구도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소소에게 공감하고 위로해 주었다.

모든 것을 토해내듯 하소연을 마친 소소는 어쩐지 친구에게 미안해졌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간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친구도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했을 터이다.

그때 문득 소소의 눈에 들어온 고구마 말랭이.

소소는 고구마 말랭이 한 봉지를 꺼내어 친구에게 건넸다.

친구는 별걸 다 준다며 웃었다.

속을 완전히 터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와 난 완전히 다른 종족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넌 어느 별에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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