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딜리버리’란 말 그대로 걸어가는 배달이다.
소소와 도도는 농담 삼아 그렇게 불렀다.
걸어서 5분 이내의 거리에 한해서만 가능한 배달 방식이다.
두 사람은 이따금 걸어서 배달을 가곤 했다.
이 경우, 배달지는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매장을 에워싼 원룸과 오피스텔 중 특정 몇 집만이 배달로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와 메모만 봐도 ‘또 시켰네.’ 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단골들이었다.
그중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꼭 주문하는 손님이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메뉴로 주문했다.
소소는 잠시 고민했다.
배달 대행업체를 호출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아까운 거리였고,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배달을 가자니 지금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너무 미숙한 상태였다.
일을 시작한 지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코코야, 바로 뒤에 배달 하나만 갔다 올게. 금방 오겠지만, 혹시 손님이나 누가 오면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웠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고 양해 좀 구해줘.”
“……네.”
갓 스무 살이 된 코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리둥절하지만 수줍은 듯 대답했다.
“빨리 갔다 올게.”
“네.”
열판이 든 피자 파우치가 제법 무겁다.
넓적한 가방을 아무리 몸에 밀착시켜도 팔은 30도 각도에서 좁혀지지 않는다.
사선으로 쭉 뻗은 오른팔에 피자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느라 힘이 바짝 들어갔다.
왼팔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힘차게 흔들었다.
매장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괄호처럼 왼쪽으로 살짝 꺾인 골목이 끝나기 전에 오피스텔 뒤편 주차장이 나왔다.
주차장 바로 옆 공동현관으로 가서 호출 벨을 누르자 곧이어 유리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T자 모양 복도가 나왔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짧고 좁은 복도 끝에 그 집이 있다.
세 집 중 오른쪽 끝집이다.
소소는 이 T자 모양 복도를 처음 봤을 때, 구조가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막다른 복도 끝, 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창문도 없이 사방이 막힌 그곳에 서자 잠깐이지만 어쩐지 갑갑했다.
곧바로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소소는 한쪽 다리를 들어 파우치를 받치고 피자를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맛있게 드세요.”
피자를 건네고 지체 없이 뒤돌아 나왔다.
손님도 아무 말 없이 피자를 받자마자 되돌아 들어갔다.
원래라면 어쩌고 저쩌고 정해진 멘트가 잔뜩 있었지만, 비대면 배달이 일상화된 지금은 가능한 말을 줄여야 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8층에 그대로 서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뭐하는 사람일까?’
‘이 정도 거리면 그냥 포장으로 주문해도 될 텐데…….’
‘그래, 귀찮으면 그럴 수도 있지.’
‘메뉴도 매번 같던데, 질리지도 않나?’
‘근데 표정이 저렇게 없을 수가 있나?’
스치는 생각을 흘려보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평소 잘 누르지 않는 닫힘 버튼을 누르고 문이 빨리 닫히길 기다렸다.
느릿느릿 문이 닫힌다.
소소는 흐릿한 시야로 좁아지는 문틈을 바라봤다.
문틈이 손가락 굵기만큼 좁아졌을 때, 휙 하고 어떤 그림자가 지나간다.
서서히 내려가던 긴장 그래프가 일순간 치솟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멈칫하더니 다시 벌어진다.
문 앞에 누가 서 있다.
소소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덜컥 겁부터 났지만 ‘손님’의 얼굴임을 인식하고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 잘못되지 않고서야 다시 나올 리 없는 손님이 눈앞에 있는 이 상황에 곧바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꿀꺽 침을 한 번 삼켰다.
하지만 소소는 갑자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었다.
“어……, 혹시 뭐가 잘못됐나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언뜻 보면 그가 소소를 응시하는 듯 보였지만, 소소가 보기에 그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소소도 그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도착한 곳에는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벽은 장난으로 붙인 스티커 한 장, 공고문 한 장도 없이 깨끗하게 닦여 있다.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성격상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섞인 생각이었다.
소소는 다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입도 떼지 않았다.
찬찬히 그를 살핀다.
버튼을 누르고 있던 손이 벽 뒤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그 손에 무언가 있다.
아주 작고 얇은 무언가.
그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채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소소에게 건넸다.
그가 손을 내밀자 소소는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뻗었다.
하얀 종이 사이에 검은 색지를 끼운 듯한 모양의 명함이었다.
앞면은 하얀 배경에 까만 글자.
글자가 읽히지 않는다.
명함을 뒤집어 뒷면도 살폈다.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정확히 아무것도 없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하다.
아지랑이 피듯 하얀 종이가 일렁거린다.
두어 번 눈을 깜박이고 다시 보아도 계속 그렇다.
‘피곤한가, 눈이 왜 이러지? 글자도 눈에 안 들어오고….’
순간 다시 온몸이 오싹해졌다.
명함을 보느라 떨구었던 고개를 그대로 고정하고 눈동자만 움직여 아직도 그가 보고 있는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천천히 명함으로 시선을 되돌리고 고개를 들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관찰하듯 똑바로 쳐다봤다.
그가 뭐든 말하길 기다렸다.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소소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어쩌라는 건가?’
소소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눈은 문에 고정한 채로.
엘리베이터는 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사실 소소는 8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와 사투를 벌였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소소는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공동현관 밖으로 나온 순간, 온몸의 긴장이 탁 풀렸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며 들쑥날쑥했던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빈 파우치를 어깨에 메고 성큼성큼 걸었다.
다시 매장으로 돌아오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5, 6분이다.
소소가 비운 5분여 동안 매장은 방문한 이도 없고 주문도 없이 평온했다.
코코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째선지 현실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언제나 현실 속이었는데 말이다.
‘쳇, 선수를 뺐겼군.’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없는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괴한 소리가 낮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