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이것까지만 배달하고 퇴근하시겠어요? 오늘은 803호 아니고 802호더라고요."
“네-!"
‘퇴근’이란 말에 피피의 대답이 활기차다.
피피의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소소는 잠시 망설였지만 배달을 내보냈다.
배달지가 매장 바로 뒷골목에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워킹 딜리버리, 그러니까 걸어서도 충분히 배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피피가 퇴근하고 나면 소소가 혼자 남아 일을 해야 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매장을 비워두고 배달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배달 대행 기사를 부르자니 비용이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소소가 봐 온 피피라면, 퇴근까지 20분 남짓 남은 시간을 이리저리 매장 안을 어슬렁거리며 허투루 보낼 게 눈에 훤했다.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게 낫겠어.
결국 배달이라도 하나 더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슬렁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소소의 속만 답답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소소는 피피를 내보내고 계산대 앞에 서서 그날의 매출을 정산했다.
몇 분 후, 피피가 돌아왔다.
유리문 너머로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갈 필요가 없는 곳인데도 굳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왔다.
심지어 걸어서 다녀오는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소소는 손으로 동전을 세며 흘끔 피피의 행동을 엿보았다.
그런데 피피가 든 파우치가 들고나갈 때와 어째 모양새가 비슷하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가벽 너머 직원용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피피를 유심히 살폈다.
역시 들고나간 피자를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손님이랑 연락이 안 돼서 다시 가져왔어요.”
“네?”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서 다시 들고 왔어요. 그럼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소소의 표정을 보고도 피피는 제 할 말만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소소는 서둘러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 신호를 들으며 안심 번호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종종 음식을 주문하고 그 사이 잠시 외출하거나 씻느라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깜박 잠이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 됐건 머지않아 손님 쪽에서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락을 받지도하지도 않았다.
다시 걸었다.
연달아 세 통을 걸었지만 모두 연결되지 않았다.
우선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 연결되지 않는다.
어떡하지.
옷을 갈아입고 피피가 나왔다.
“연락되면 배달 대행 불러서 보내세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소소는 떨떠름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주문하신 피자가 배달되지 못했습니다. 답장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올까.
답장이 오면 다시 상황을 설명하고, 늦었지만 직접 배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끝까지 답장이 오지 않는다면, 이 상황을 이대로 두고 퇴근해도 될까?
영업이 끝나고 마감이 다 끝날 때까지도 손님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소소는 결국 도도에게 전화했다.
“점장님, 피피 매니저가 마지막으로 배달 간 곳에 손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배달을 못했는데, 어떡하죠?”
“피피는?”
“퇴근했습니다.”
“근데 왜 도로 가져왔대?”
“모르겠어요…….”
“문 앞에 비대면으로 전달하고 사진 찍어서 문자 보내면 되는데."
“아마 공동현관 안에 못 들어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휴, 연락이 안 돼서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지. 문자라도 남겨 놓자.”
“문자는 보냈습니다.”
도도에게 문자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었다.
“문자 보냈으면 됐어. 너도 그만 퇴근하고, 내일 다시 전화해 보자.”
“네.”
샤워 후, 소소는 군옥수수맛 아몬드와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허기를 달랬다.
으레 틀어둔 TV에서는 여행 프로그램이 재방송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본 방송이다.
소소는 다른 채널로 돌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500ml 맥주 캔이 비었다.
약간의 변의도 느껴진다.
그러나 꼼짝도 하기가 싫었다.
그저 가만히 TV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TV 옆 전자시계의 숫자가 눈에 띄었다.
새벽 1시.
맥주가 조금 더 마시고 싶었지만, 그러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더 늦어지니 참기로 했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양치를 했다.
새벽 1시 반, 소소에게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당연히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를 켜고 책을 펼쳤다.
최근 소설책에 손에 가지 않아 선택한 미술사에 관련된 책이었다.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슬금 잠이 왔다.
책을 덮고 다시 누웠다.
그때였다.
베개 옆에서 충전 중인 핸드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이 시간에?
소소는 어플 알림이나 친구의 카톡 메시지를 예상하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응?
그런데 잠금을 해제하기 전 화면에 뜬 문자 메시지를 보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고 문자를 다시 읽었다.
‘공동현관 비밀 번호 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