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3

by 아무





연락두절 802호 손님에게 다시 전화가 온 것은 놀랍게도 소소와 통화한 바로 그날이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피피에게 해야 할 일과 전달 사항 따위를 알려주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피피가 휙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말이 끊어진 소소는 행주로 준비대를 닦으며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혼나는 건 너니까 알아서 해.

“그 802호, 지금 배달해 달라는 데요.”

“지금이요?”

“네.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바로 먹을 건가 봐요.”

“그런가 보네요.”

소소는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피자를 만들며 고민했다.

피피를 보낼 것인가, 자기가 갈 것인가.

피피를 보내면 단 몇 분이지만 매장에 더 머물러야 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평소 그의 행동 패턴으로 보자면 배달 후 말도 없이 담배까지 피고 느긋하게 들어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 집 제가 배달하고 바로 퇴근할게요.”

소소는 피자를 다 만들고 무얼 하는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피피에게 말했다.

“아, 주임님이 가시게요? 감사합니다.”

소소는 피피의 우렁찬 대답 소리를 듣고 쓸데없이 씩씩하다고 생각했다.

“퇴근하십시오.”

멀리서 피피가 소리쳤다.

설거지를 하던 소소는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계산대로 달려가 포스에 퇴근을 기록했다.

오븐 속 피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서둘러 싱크대로 돌아와 세제가 묻은 설거지를 급하게 헹궜다.

싱크대 옆 선반에 튄 거품을 물로 씻어 내고 너무 어수선하지 않게만 정리를 한 뒤, 재빨리 휴게실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피피가 피자를 자르고 있다.

소소는 피자를 담을 비닐봉지를 펼쳐 들고 피피 옆에 서서 기다렸다.

피자, 피클, 핫소스, 빠진 게 없는지 확인 한 뒤 비닐봉지를 단단히 묶었다.

이번엔 자신의 소지품을 체크했다.

매기만 하면 끝인 작은 크로스백과 유니폼이 든 에코백이 전부다.

또 매장 안에 자신의 물건이 없는지 확인했다.

자신의 물품이 아무 데나 나뒹구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퇴근할 때면 항상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한 사물함에 모두 욱여넣는다.

퇴근 준비도 끝났다.

덩그러니 소소를 기다리는 봉투를 손에 들고 피피에게 퇴근을 고했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푹 쉬세요.”

사무실에 앉아 있던 피피가 그 앞을 지나가는 소소를 보며 씩씩하게 말했다.

“네, 배달은 완료하고 카톡 하겠습니다.”

“네.”

소소는 도망치 듯 직원용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오피스텔 공동현관 앞에 도착하기까지는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선 밖에서 802호를 호출했다.

또 연락이 끊기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새벽에 받은 현관 비밀번호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또 호출에 응하지 않으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서 문 앞에 놓고 오면 그만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잠들지 않았나 보다.

유리문이 열렸다.

몸을 살짝 옆으로 틀고 다 열리지도 않은 유리문 사이로 서둘러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서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바로 열린다.

8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소소는 집에 가서 뭘 먹을지 생각했다.

배가 몹시 고팠다.

점심때 괜히 샐러드를 먹었다며 조금 후회했다.

‘딩동댕’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했다.

복도 끝에 바로 802호가 보인다.

성큼성큼 걸어가 현관문 앞에서 섰다.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벨을 눌렀다.

기다렸다는 듯 문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 놓고 가 주세요.”

“네-.”

소소는 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피자를 문 옆에 내려 두고 혹시 손님과 마주치면 인사하기도 모르는 척하기도 애매할 것 같아 바로 뒤돌아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소소는 ‘8’이라는 숫자를 보고도 선뜻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문 앞에 우뚝 섰다.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보고 갑자기 지난번 방문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803호 배달이었다.

그 손님이 명함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종이를 준답시고 허공을 응시하는 바람에 내려가는 내내 내심 공포에 떨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어쩌지. 계단으로 내려갈까.

8층이면 내려갈만하다고 생각했다.

에라이.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 버튼을 누르려고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나타나 버튼을 눌렀다.

소소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의 정체를 확인했다.

어……, 아! 그 남자다.

소소와 눈이 마주친 그는 슬쩍 고개 숙여 인사했다.

소소도 그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삐그덕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어색한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 뒤로 언뜻 802호의 문이 열린 것이 보였다.

열린 문틈으로 희고 앙상한 손이 피자 봉지를 들고 들어간다.

뼈가 도드라져 보일 만큼 야위고 창백한 손.

802호의 문이 닫힌다.

소소는 철컥 소리가 날 때까지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가 말없이 손짓했다.

먼저 타라는 뜻인 듯했다.

소소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고개를 까딱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소소는 숫자 버튼에 눈을 고정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802호의 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소소 앞으로 다시 손이 불쑥 나타나 ‘1’을 눌렀다.

아차.

엘리베이터 안에 공기가 부족하다.

어색한 기류에 숨이 막힌다.

문 위에 적힌 숫자가 줄어든다.

소소는 빨리 ‘1’이 되길 바라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따라 셌다.

‘1’

문이 열렸다.

소소는 고개를 돌려 목례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공동현관 밖으로 나왔다.

하아.

약간의 긴장감과 어색함을 내뱉고 슬쩍 뒤돌아 보았다.

유리문 너머로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힌다.

그는 내리지 않았다.

소소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왜 엘리베이터를 탔을까.

‘근데 내가 저 사람을 어디서 봤더라. 803호가 저렇게 생겼던가? 분명 어디서 봤는데.’

소소는 낯익은 그를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 내려 애썼지만 괜히 속만 답답해지고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 카톡.

‘완료’

소소는 피피에게 카톡을 보내고, 에어팟을 꺼내어 귀에 꽂았다.

신나는 노래로 틀었다.

‘어디선가 봤다면 나중에라도 기억이 나겠지. 엘리베이터는……, 그냥 심심해서 탔을지도 몰라.’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에코백을 다시 고쳐 메고 얕은 오르막을 힘차게 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왜 자꾸 방해하는 거지?'

'무슨 소리야, 방해라니. 난 그저 엘리베이터가 타고 싶었을 뿐이야.'

'저 여자 일에 두 번이나 끼어들었잖아. 이게 방해가 아니면 뭐야.'

'착각하지 마. 난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너희 같은 기생귀와는 질적으로 달라.'

'흥.'

딩동댕.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했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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