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다.
‘삐이’ 하고 우는 알람과 함께 프린트되어 올라온 주문서가 ‘사각’하고 잘리는 소리도,
‘우우웅’ 하고 돌아가는 오븐 소리도,
‘고오오오’ 하고 울리는 배기 소리도,
스테인리스 주방 도구가 부딪는 소리도,
설거지를 하느라 덜거덕 거리는 소리도,
출근부터 퇴근까지 쉴 새 없이 투덜거리는 3개월 차 아르바이트생의 칭얼거림도,
미주신경에 어떤 문제가 있어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1년에 한 번 기절한다는 1일 차 아르바이트생의 기척도, (소소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탓인지 뜨거운 것을 맨손으로 만지더니 깜짝 놀라서 어지럽다며 5분간 휴식을 요구하기에 괜찮아질 때까지 휴게실에서 푹 쉬라고 해 두었다)
다행히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받기 위해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았던 키친 타올로 눈가를 닦았다.
구부정하게 앉아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의 모서리에 시선을 던졌다.
이명이 레이저처럼 귓속을 파고든다.
위이이잉.
얼마 후 거칠었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하아.
무언가를 토해내듯 숨을 내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약간의 열감과 나른함이 찾아왔다.
다시 한번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요한 주방의 정적을 깨뜨렸다.
한참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서 오는 전화인지 알 것 같았다.
소소는 본사 고객 센터일 거라고 예상했다.
터덜터덜 사무실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유선 전화 화면에 뜬 전화번호가 낯설다.
발신지는 배달 어플 고객 센터였다.
“00시 00분 주문 건으로 전화드렸습니다.”
“네. 저도 고객님과 통화했습니다.”
“네, 고객님이 화가 많이 나셨더라고요. 그래서 업체 영업에 혹시 지장이 생길까 봐 이렇게 연락드리는 겁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소소는 의미 없는 사과를 던졌다.
“저한테 죄송할 건 없죠.”
상대는 새침하게 받아쳤다.
“다시 통화를 해야 되면 저희는 안심 번호라서 연락처를 모르는데,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소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 생각하고 차후 연락할 전화번호를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고객님이 동의하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익숙한 멜로디와 멘트가 반복된다.
“고객님이 전화번호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셨어요. 전화 안 해도 된다고 하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소소는 조금 허무한 결말에 살짝 맥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소는 곧바로 점장인 도도에게 전화했다.
내일은 소소가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미리 전해두어야 했다.
언뜻 해결된 듯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전화 안 해도 된다고 하면 그냥 놔둬.”
도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이미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 단단하게 다져진 베테랑다운 말투였다.
기운 빠지는 하루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소소는 영업 종료 시간을 이날만큼 애타게 기다린 적이 없었다.
정각 10시는 안심할 수 없어 2분 더 지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업이 끝나고 모든 업무를 끝마쳤다.
옷을 갈아입고 에어컨을 끄고 매장 문을 잠갔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하고 이어폰을 꺼냈다.
이제 세상과 단절될 시간이다.
힐링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잔잔한 연주곡이 흐른다.
까만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 불빛들이 흘러간다.
흐르는 불빛이 피아노 연주에 맞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소소 주위를 에워싼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불빛이 소소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포근한 극세사 담요처럼 보드랍던 불빛은 점점 강하게 끌어안았다.
옴짝달싹 못하도록 서서히 강도를 높이며 뻣뻣해지는 불빛.
소소는 마치 돌덩어리에 흡수되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조각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불빛은 만족을 모르고 소소가 터질 만큼 더 꽉 죄었다.
그리고 도망칠 의지가 없는 소소의 몸을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감각을 상실한 소소는 불빛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불빛에 홀랑 마음을 빼앗긴 채 아래로, 아래로 끌려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