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5

by 아무




폭신한 침대 위로 아침 햇살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개운한 아침이다.

소녀는 부드러운 이불속에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집을 떠나온 불안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조금 설레는 기분으로 침대에서 나와 화장대로 갔다.

거울 속 얼굴을 살폈다.

이상 없음.

옷장을 열었다.

이든이 빌려준 드레스 한 벌.

괜스레 벽지를 쓸어 만진다.

창가로 갔다.

창밖의 풍경이 푸르고 푸르고 또 푸르다.

창틀에 기대어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희미하게 물소리가 날아온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쳐 바스락거린다.

산새가 지저귄다.

낮은 말소리가 들린다.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았다.

신과 담이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현관을 향해 달렸다.

하마터면 계단에서 구를 뻔했다.

‘끼익‘

경첩이 삐걱이며 문이 열렸다.

신과 담이 앉은 채로 뒤돌아 보았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좋은 아침.“

담이 먼저 인사했다.

“정말 좋은 아침이에요.”

소녀가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런데 두 분, 이렇게 일찍 어쩐 일이세요?”

“배달 심부름.”

신이 대답했다.

신과 담 사이에 어제 보았던 사가의 바구니가 놓여 있다.

둘은 슬그머니 일어나 동시에 엉덩이를 털고 소녀가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 한 편에 놓인 식탁 위로 사가가 만들어준 아침 식사가 차려졌다.

“사가, 잘 먹을게.”

두 손을 모으고 담이 싱글벙글 웃으며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잘 먹겠습니다.”

소녀도 씩씩하게 외치고 수저를 들었다.

“잘 먹을게.”

들릴 듯 말 듯 낮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신도 식사를 시작했다.


사가는 이, 삼일에 한 번 리타의 집을 방문했다.

일손을 보태기 위함이었다

리타의 집에는 그녀와 다섯 아이가 함께 살았는데,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덟 살, 여섯 살, 다섯 살, 세 살 아이까지 다섯 식구였다가, 얼마 전 갓난아이가 들어와 여섯 식구가 되었다.

모두 리타가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가족이 되어 주었고, 그들 역시 리타에게 가족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다섯 아이를 한 사람이 보살피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를 알기에 사가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흔쾌히 그녀의 일손이 되었다.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마을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가는 아이들의 간식 담당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직접 만든 간식을 먹고 어김없이 맛있다고 해 줄 때, 감사 인사로 꽉 안아줄 때에는 더없이 행복했고, 밝은 미소로 반겨줄 때나 그저 옆에 꼭 붙어 있을 때에는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세 살 아이가 아침밥을 먹고 사가 옆에 딱 붙어 앉아 간식을 먹고 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막 설거지를 끝낸 리타에게 휴식을 권했다.

그때였다.

사가의 귓가에 세 사람의 식사 인사가 울렸다.

신이 들려주는 것이다.

당당히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의기양양할 신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끝낸 담은 볼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신은 아직 용건이 남았는지 식탁 의자에 앉아 소녀를 흘긋 보았다.

식탁 위에는 사가가 만들어준 소녀의 점심이 놓여 있다.

소녀가 신의 눈길을 느꼈는지 다시 식탁으로 가 앉았다.

“차 한 잔 드릴까요?”

사가의 바구니에서 꺼낸 찻주전자를 향해 팔을 뻗으며 말했다.

“아니, 차는 됐어.”

“그럼 혹시 제게 할말이라도…….”

“그런 건 아닌데…….“

“…”

“잠시 나를 따라와 주겠어?”

“어딜 가는 건데요?”

“그건 나중에 설명하면 안 될까?”

“좋아요.“

소녀가 긍정의 대답을 내놓자 신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은 소녀의 집 뒤편으로 걸어갔다.

소녀는 신을 뒤따랐다.

뒤뜰의 경계에 검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앞서 걷던 신이 소녀를 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 신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검은 대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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