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Soundscape by SleepingLion #1
Soundscape by SleepingLion의 첫번째 NFT를 공개합니다. 슬리핑라이언은 지구의 울림을 사운드스케이프로 기록하는 탐험가입니다. 한 공간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그 어떤 음악보다 더 아름답고 희소한 가치를 가집니다. 이번 NFT 시리즈를 통해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도의 소리유산들을 소장할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NFT로 공개되는 음원들에 대한 스토리에 대한 글로, 해당 음원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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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usic.3pm.earth/ko/collection/SLEEPINGLION/detail?productId=379
그렇게 또다시 봄날은 왔다
곶자왈 / 동백동산 / 람사르습지 / 먼물깍
뜻이 있는 곳에 소리가 있다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옮긴다. 조금씩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귀도 더 예민해진다. 그렇게 도착한 연못 앞에서 또다시 아쉬운 탄성이 나오기 직전, "히히~ 호호~ 기기~" 뭐라 말로 옮길 수 없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2023년 2월 1일, 동백동산 먼물깍에서 산개구리의 첫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다.
"대표님, 이거 산개구리 소리 맞죠?"
"(끄덕끄덕) 쉿~"
산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1월부터 부지런히 찾아왔다. 다섯 번째 방문만에 드디어 산개구리와 마주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산개구리의 울음소리와 마주했다. 그 울음소리가 끊어지는 것이 싫었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조금씩 커져가는 소리에 반가운 마음보다 안도의 한 숨이 더 앞섰다. 너희들도 힘들었을 텐데 또 살아서 이렇게 울어주는구나. 아직 한 겨울의 추위가 완전히 물러난 것도 아니고, 만물이 깨어난다는 '경칩'도 한 달이나 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녹음하는 나에게 있어 산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새로운 봄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원숭이가 새가 되고, 새는 개구리가 되다
정확히 작년 2월 21일, 동백동산에서 처음으로 산개구리의 소리를 마주하였을 때 낯선 소리를 담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집으로 돌아가 얼른 소리를 편집하고 생태관광협회 회원들이 모여있는 공간에 소리를 공유했다.
"혹시 원숭이처럼 들리는 이 새소리가 어떤 새인지 아시는 분 계실까요?"
"이거 산개구리 소린디."
"맞아요. 요즘 먼물깍에 소리 들려요. 어제 듣고도 새소리라고 하시니 새소리에서 찾고 있었네요."
제주생태관광협회 고제량 회장님의 한마디가 생일 선물로 느껴졌다. 연못 가까이에서 녹음하면서도 개구리는커녕 올챙이도 보지 못했기에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나에게는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합리적이었다. 이 날을 계기로 소리풍경을 녹음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단순히 자연의 소리만을 녹음하는 사람이 아닌 생명의 소리를 녹음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자연은 사라지지 않지만, 생명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소리들을 잘 기록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2022년에는 2월 10일에 첫 울음소리가 목격되었다고 하니, 2023년의 울음소리는 약 10여일이 빨라진 것이다. 소리풍경도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하나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
먼저 우는 개구리가 먼저 잡아먹힌다
그 후로도 꽤나 여러 번 동백동산을 찾았다. 먼물깍에서 울어대는 산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뚜렷하게 담고 싶었다. 그 누가 7전 8기라고 했던가, 10번째 방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담았던 첫 울음소리보다 나은 소리가 나타나질 않는다. 결국 더 이상의 녹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냥 허투루 쓴 시간은 아니었다. 눈을 감고 헤드셋을 쓰면 신기하게도 눈을 떴을 때보다 많은 정보들이 들어온다. 오랜 시간 머물며 산개구리의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이 녀석들이 엄청나게도 소리에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기서 운다 싶어서 조심스레 다가가면 어느샌가 울음소리가 멈추어 있다. 몇 번을 반복하다 나도 그냥 연못과 조금 떨어진 정자 아래에 마이크를 설치하였다. 이제 호흡마저 줄이며 소리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서로 간의 이야기가 먼저 흘러 들어온다. 심지어 주머니에 라디오를 켜두고 연못에서 간식을 먹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제는 내 마음도 산개구리와 같은 마음인지라, 얼른 사람들이 떠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또다시 하나의 산개구리가 울기 시작한다.
"호르르릉 호르릉, 호르르릉 호르릉."
아직도 내 귀에는 원숭이 소리로 들리지만,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동물과장이셨던 한상훈 박사님은 백과사전에 위와 같이 울음소리를 정의하였다. 이제야 울기 시작한 산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근처에서 날아온 큰부리까마귀의 울음소리 한 번에 뚝 그치고 만다. 포식자가 나타난 것이다. 산개구리의 울음주머니가 클수록 짝짓기에도 유리하지만, 그 매력은 암컷이 아닌 포식자에게도 해당되는 매력인가 보다.
산개구리도 자신의 매력을 알기 때문에 혼자 눈치를 보면서 울다가도 다른 녀석들이 따라 울지 않으면 그 울음을 멈추어버린다. 마치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혼자 전진하고 있는데 동료의 엄호사격이 없는 것과 같다. 비가 올 때마다 개구리들이 눈치도 보지 않고 신나게 우는 것도 어쩌면 빗소리 덕분에 동료의 엄호사격이 필요 없어진 탓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