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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핑라이언 May 24. 2023

봄비 내리는 대정향교

[NFT] Soundscape by SleepingLion #2

Soundscape by SleepingLion의 두 번째 NFT를 공개합니다. 슬리핑라이언은 지구의 울림을 사운드스케이프로 기록하는 탐험가입니다. 한 공간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그 어떤 음악보다 더 아름답고 희소한 가치를 가집니다. 이번 NFT 시리즈를 통해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도의 소리유산들을 소장할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NFT로 공개되는 음원들에 대한 스토리에 대한 글로, 해당 음원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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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usic.3pm.earth/ko/collection/SLEEPINGLION/detail?productId=381


빗방울이 아랫돌을 뚫기까지
대정읍 / 안덕면 / 대정향교 / 추사 / 김정희  

 

 풍수지리를 몰라도 이곳이 명당 

  바다 건너온 습한 공기가 화산섬을 감싼다. 마이크와 녹음기가 워낙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습도 조절이다. 제주가 지닌 특유의 눅눅함이 장비의 수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습기를 머금은 구름은 이내 빗방울을 떨어트린다. 이렇게 습도에 취약함을 보이는 녹음장비를 가지고 빗소리를 녹음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화순곶자왈에서 녹음하던 것을 멈추고 서둘러 장비를 차에 실었다. 아직 녹음을 끝내기에는 이른 시간인지라 아쉬운 마음이 컸다. 운전대를 잡고 다른 곳을 탐색하는 내 눈에 차창 밖으로 낮은 단산이 눈에 들어왔다. 

  단산과 금산의 사이로 진입하여 내리막 길을 타면서, 일주도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단산의 자태에 탄성을 지른다. 일주도로에서 볼 때에는 완만한 산등성이를 보여주다가, 반대로 돌아서면 그 어떤 오름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장엄한 기운을 보여준다. 그 기운이 오른편에 위치한 산방산 마저 잊게 한다. 대정향교는 이러한 단산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숨골처럼 아래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우산을 펴고 곶자왈에서 대충 구겨 넣었던 장비들을 챙겨서 천천히 대정향교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명륜당과 대성전, 동재와 서재가 (ㅁ) 자 형태로 하늘을 열었고, 그 위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이 잔디에 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에서 울린다.   

"툭, 투둑.. 툭 툭 툭.. 투투투 툭" 


 처마가 있다는 것은 비를 즐겼다는 증거

  투박한 빗소리를 뒤로 하고 대성전 뒤편에 도착했다. 앞서 들렸던 빗소리보다 더 명료하고 여운이 길다. 녹음장비를 설치하기 전에 어느 곳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제일 재미있는가를 살펴본다. 한 공간이지만 세 가지의 빗소리를 가지고 있다. 처마 안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랫돌에 부딪히며 흩어지는 소리, 처마 끝의 기와에서 바로 땅으로 떨어지면서 물 웅덩이에서 왕관을 그리는 소리, 처마 바깥에서 땅으로 바로 떨어지면서 수풀 사이로 숨어드는 소리까지 각각의 소리가 한 장소에서 어우러져 나고 있다. 게다가 뒤편의 단산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대성전 뒤편의 아늑한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처마가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빗소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과거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처마를 가지고 있다. 대정향교뿐만 아니라 제주의 관덕정이나 목관아, 성읍민속마을 모두 처마를 가지고 있다. 처마가 있음으로 해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겨울에 맺힌 고드름, 바람 소리 등 다양한 날씨를 소리로 즐길 수 있게 된다. '날씨의 맛'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날씨를 소리로 접근하는 파트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사전 기획 당시 PD에게 대정향교를 적극적으로 추천했었다. 방송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비자림으로 나가긴 했으나, 여전히 나에게는 날씨를 소리로 느끼는 데 있어선 대정향교가 가장 으뜸이다. 아파트에서 실외기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도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은 장소이기도 하다.  


 빗방울이 아랫돌을 뚫기까지

  녹음할 때에는 현장 모니터링이 필수이기 때문에 헤드셋이 늘 머리 위에 얹혀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빗소리를 녹음할 때에는 예외로 둔다. 빗소리가 주변의 약한 소음들을 차단해 주기 때문에 큰 변수가 없기 때문이다. 녹음기를 켜두고는 멀찍이 앉아서 나 역시 빗소리를 듣는다. 형형색색의 처마를 바라보다가 빗방울과 함께 고개를 떨구어 움푹 파인 돌계단에서 시선이 멈춘다. 


"통.. 통통.. 통.. 통통"


  2cm가 채 안 되는 저 구멍을 내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저 소리를 내야 했을까. 대정향교가 세워진 지 180년이 되었으니, 저 소리는 무한히 반복되었을 것이다. 비가 올 때도, 눈이 와서 녹을 때에도, 새벽녘 이슬이 떨어질 때에도 모두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명륜당에서 강학을 하던 학생들도, 멀리 유배 와서 후학을 양성하던 추사 김정희도 모두 이곳에서 나와 같은 소리를 들었으리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빗소리를 잠시 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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