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리핑라이언 Jun 15. 2023

물영아리 전문의 '큰오색딱따구리'

[NFT] Soundscape by SleepingLion #5

지구의 울림을 기록하는 슬리핑라이언의 다섯 번째 NFT를 공개합니다. 이번 NFT 시리즈를 통해 화산섬, 제주도의 소리유산들을 소장할 수 있으며 2차 저작으로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NFT 구매 바로가기 

https://music.3pm.earth/ko/collection/SLEEPINGLION/detail?productId=396 


숲 속의 내과 전문의 '큰오색딱따구리'
제주도 / 남원읍 / 수망리 / 물영아리오름


진료 시간은 새벽 5시부터입니다

  새벽 3시에 집을 나선다. 서쪽 끝 수월봉에 거주하다 보니 동쪽으로 녹음 갈 때에는 다른 곳보다 시간을 더 여유 있게 두고 나서야 한다. 목적지인 물영아리 오름에 도착한 시간은 4시 30분. 시간을 보니 아슬아슬하다. 급하게 녹음기와 삼각대를 챙겨서 빠른 걸음으로 오름 입구로 향한다. 오름 입구에 잠들어 있던 들개 무리가 사납게 짖는다. 무시하고 걸으니 아직도 잠에 취한 것인지 따라오진 않는다. 사방이 캄캄하여 헤드랜턴 없이는 분간이 되질 않는다. 그래도 평지 구간은 제법 빠른 속도로 걸어왔다. 그리고 마주한 계단을 보고는 뜨악하는 외마디가 나온다. 영주산에 천국의 계단이 있다면, 물영아리에는 천 개의 계단이 있다. 


"헉헉.. 헉헉.."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그 어둠이 어울릴 만큼 주변이 고요하다. 그 고요함을 깨는 것은 나의 숨소리 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쉬었다 갈 수 있게 놓인 의자가 없었더라면 상당히 힘든 등반이 되었을 것이다. 한계점에 다다를 때마다 의자가 나타났고 그곳에서 자연스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쉬었다가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물영아리 오름 분화구에 도착했다. 예상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더니 이미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시작하고 있었다. 


"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 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


진찰을 좀 해보겠습니다

  오늘 녹음의 주인공인 큰오색딱따구리의 드러밍이 분화구 전체를 휘감고 있다. 고요한 새벽 공기는 무겁기 때문에 그 소리가 더욱 웅장하게 들려온다. 얼른 녹음기를 꺼내 설치를 하고 녹음버튼을 누른 뒤 눈을 감고 그 소리에 빠져본다. 많게는 1초에 16번 정도 나무를 쪼는데 그 소리가 마치 공사장에서 땅을 파는 기계의 소리와 흡사하다. 딱따구리는 한 번 나무를 쪼을 때마다 중력의 1000배에 가까운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스펀지와 같은 머릿속 연골이다. 또한 자신의 키만큼 기다란 혀를 가진 딱따구리는 그 혀의 근육이 뇌 전체를 휘감고 있기 때문에 그 충격을 분산하기도 한다. 반면 뇌와는 달리 눈은 다른 새와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무에 박을 때마다 눈을 감아야 한다. 윙크를 가장 잘하는 새가 되겠다. 

  미친 듯이 나무를 쪼아대면서 만들어내는 이 소리는 번식기에 있어서는 일종의 구애이자, 영역 표시도 되지만 번식기가 지난 다음에는 먹이활동을 위한 소리가 훨씬 많아진다. 알을 낳아 영양이 부족해진 암컷에게도,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에게도 가장 좋은 먹이는 단백질이 풍부한 애벌레이다. 나에게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는 마치 의사가 진료 전에 청진기를 가져다 대고 숨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행위로 느껴진다. 


내과 진료를 시작합니다

  드러밍의 소리는 한동안 이어지다가 멈추고 또다시 이어진다. 잠시 멈추었을 때 큰오색딱따구리는 긴 혀를 구멍에 넣어서 마치 낚시를 하듯 나무의 애벌레들을 포획한다. 딱따구리의 혀 모양은 마치 문어 낚시에 쓰는 낚시 바늘과도 닮아있다. 딱따구리는 본능적으로 나무의 약한 부분을 찾아낸다. 그리고 구멍을 뚫어보면 그곳 안에는 필연적으로 벌레의 알이나 애벌레가 있다. 나무의 구멍이 뚫어지게 되면 나무가 죽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무는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재생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해충이나 애벌레로 발생하는 나무속의 상처가 곪아가는 것은 나무의 자생범위를 초과한다. 가만히 두면 세월에 따라 그 나무는 병충해라는 증상으로 죽어간다. 하지만 이를 막아주는 것이 바로 딱따구리가 되겠다. 나무를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라 불리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새벽부터 해가 지기까지 딱따구리의 소리는 숲 전체를 관장한다. 

  

작가의 이전글 금오름 맹꽁이가 꽁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