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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끝에서2 (생환체험기)

2. 파도의 심판

by sleepingwisdom

2. 파도의 심판

멈춘 시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다에서 가장 위험한 지점에 서 있었다.

해변가 파도가 끝나는 자리.

'뭔가... 이상하다.'

본능이 경고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니,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었다.

너무나 고요한 침묵.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수평선 끝에서 시작된 것은 파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건물이었고, 산이었고, 내 앞에 무너져 내리려는 세계의 끝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벽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우르르르르...

천둥 같은 소리가 내 고막을 흔들었다.

'이건... 이건 진짜가 아니야.'

하지만 현실이었다. 거대한 파도는 서서히 가속을 붙이며 내 앞에 이미 다가왔다.



시간이 기묘하게 늘어났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공중에서 반짝이며 춤추고, 거품들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며 터지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도망쳐야 해!'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이 경직된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성보다 빠른 본능이 나를 움직였다. 거대한 파도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뚫고 나가야 해!'



곧장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공중에 떠 있는 그 짧은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서서 맞았다면 어땠을까? 모래사장으로 밀려나기만 했다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몸은 공중에 떠 있었고, 아래로는 분노한 바다가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쾅!!!

내 몸이 마치 세상이 요동치듯 폭발했다.

거대한 주먹이 내 등을 내리쳤다. 숨이 한 번에 빠져나갔다. 순간적으로 몰아친 파도가 나를 강하게 후려쳤고, 내 몸은 그에 휩쓸려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쿵!

등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그 순간 척추를 따라 전기가 흘렀다. 번개 같은 찌릿함이 온몸을 관통했다.

입이 벌어졌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대신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숨을... 숨을 쉴 수 없어.'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공기 대신 거칠고 짠 바닷물이 폐 속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침묵 속의 파괴


물속은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을 깨는 듯, 허리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뚝.

마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 같은, 건조하고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이어서—

뚝. 뚝.

오른쪽 어깨에서. 갈비뼈에서. 내 몸이 차례차례 부서지고 있었다.

물속이었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들렸다. 아니, 들리는 것을 넘어 내 몸을 타고 퍼져 나갔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고막을 통해서가 아니라 뼈를 따라, 근육을 따라, 신경을 따라 직접 뇌로 전달되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손가락이 있기는 한 걸까? 감각이 사라졌다.

'일어나야 해. 일어나야 해!'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렸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거대한 무게가 나를 바닥에 눌러붙이고 있었다. 바다 전체가 내 위에 올라앉은 것 같았다.



움직여. 제발.

하지만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차가운 물이 내 몸을 감쌌다.

온도가 점점 내려갔다. 손끝부터 시작해서 팔목, 팔꿈치, 어깨로 차가움이 기어올라왔다. 마치 죽음이 내 몸을 천천히 점령해가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느려졌다.

쿠웅... 쿠우웅... 쿠우우우...



평소보다 훨씬 느린 리듬. 마치 시계가 멈춰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의식은 더욱 또렷해졌다. 고통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 잠깐, 아주 잠깐 얼굴이 물 위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태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숨을... 숨을 쉬어야 해.'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숨을 쉴 기회가 생겼다는 작은 희망을 느끼게 했다.

입을 벌렸다. 하지만 공기를 들이마시기도 전에 다시 물이 나를 끌어당겼다. 파도는 다시 나를 깊은 물속으로 내던졌다.

그 짧은 순간의 희망이 더 큰 절망을 만들었다.

파도에 휩쓸려 모래가 입안에 달라붙고 목구멍을 긁으며 내려갔다.



폐가 불타는 것 같았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산소 대신 바닷물로 가득 찬 폐는 무거운 돌처럼 내 가슴을 짓눌렀다.

찬 바닷물과 모래가 엉켜 목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확연했다. 무언가 거친 돌덩이 같은 것이 목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 몸은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

눈을 떠보려 했지만, 바닷물이 눈가로 스며들어 자극했다.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사라질 듯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하게 밀려왔지만, 그럴수록 내 몸은 점점 더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생명에 대한 본능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지만, 몸은 무거운 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의 불빛이 점점 작아졌다. 마치 깜박이는 촛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빛.

바다는 요동쳐 됐다. 나는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더 깊은 곳으로,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머릿속이 점점 어두워졌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생각이 스쳐갔다.

'이것이... 끝인가?'




그 숨막히는 순간, 파도의 심판을 받던 그 찰나가 지금도 생생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던 공포와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삶에 대한 간절함이.




[‘파도의 끝에서’ 시리즈]는 실화 기반 생환 체험기로, 매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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