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되어 세상을 마주한다
이제 정말 서른이 되었다. 꽉찬 29살이다. 이때까지의 삶을 돌아보자면 다사다난 했다. 근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들보다 딱 한 스푼 더 다이나믹 했던 것 같다.
이력서를 100군데도 넘게 넣고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게 24살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서 직무에 몸을 끼워 맞추느라 남들보다 더 고생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그 흔한 토익조차 준비되지 않았는데 시간은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흘렀다.
결국에 방황하며 회사에 들어갔다 나오길 10번 남짓 반복했다. 끈기가 없다는 비난과 함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에 절어 살았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내가 배우고 싶은 걸 끈기 있게 배웠다. 사실 해내지 못할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부딪혀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50번이 넘는 서류 탈락을 통해 , 넘지 못한 40번의 면접을 통해 실패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주체적으로 삶을 기획하며 살아가기보단 계획된 삶을 좋아한다. 큰 목표를 정하고 그게 맞는 세부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세부 계획을 나열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맞는 큰 목표가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그 목표에 맞게 부지런히 자신의 욕망을 맞추어가며 그게 당신의 성공과 이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그랬다. 내 나이에 맞는 보편적 욕망이 충족되지 않자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우울했고 모든 목표가 사라진 것 같았다. 취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학교를 다니며 무조건적으로 세우던 계획들, 세부 목표들은 나를 대학에 보내주었지만 취업 시장은 달랐다. 나는 주체적으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내가 세운 계획들에 의구심을 가지고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남들이 쉽게 이루어내는 것들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괴로웠다.
취업 후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사야한다는 다른이들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고, 나의 꿈이 되면서 나는 계획을 세우며 허상을 쫓았다. 과거의 나는 대학원에 가고 싶어하고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 돈을 버는 게 목표였는데 현실의 나는 집을 사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잘게 쪼개진 계획들이 목표들이 나의 삶을 더욱 퍽퍽하게 만들었고 평범하게 만들었다. 주변을 보니 다들 자신의 욕망보다는 다른이들의 욕망을 꿈꾸며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갈망하며 평범한 계획에 자신의 삶을 쪼개 넣고 있었다.
나는 나의 삶을 나에게 맞게 다시 기획해야 했다. 아주 오랜 방황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계획들을 버리는데, 욕망에 젖은 타인의 욕망을 버리는데 십년이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맞는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바꿨다.
나는 가르치는데 재미를 느꼈고, 사람들과의 대화로부터 인사이트를 얻으며 글을 쓰는 취미가 있었다. 그랬기에 꾸준히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무조건적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다들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하고 싶은 일을 딱 삼년만 해보고 다시 돌아가도 늦지 않았다. 그래서 삼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에세이집을 출간할 수 있었고, 한 분야에 특화된 튜터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작업실에서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고 주말과 평일 저녁에는 운동을 다녔다. 투자를 하고 집을 사야한다는 계획을 지우자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졌다. 발레와 주짓수와 폴댄스 그리고 사격 같은 스포츠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이 건강지자 조금 더 주체적으로 생을 기획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시간을 쪼개 영어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마주할 때는 최대한 다양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어보기 위해 리스트를 짠다. 다른 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최대한 나의 감정을 내려놓고 그들로부터 나의 모습을 찾거나 그들이 좋아하는 소통 방식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나를 잘 먹이고, 세상에 대한 이치를 파악하며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좋은 집과 많은 돈이 있진 않아도 나를 더 잘 챙겨주고 스스로를 아끼며 언제나 무궁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마흔의 나는 세상을 안아줄 수 있는 너른 마음을 가지고 나만의 인사이트로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일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에게 당신 또한 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할 일도 많다. 도자기 빚는 법을 배우고 싶고, 목공예와 타일 작업도 배우고 싶다. 자주 터키 음식 클래스와 콘텐츠 크리에이팅 수업을 들락거리며 갓 스물이 되는 아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에게 편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나의 이야기로 세상에 성공하고 싶다. 비슷한 경험과 보편적인 계획들, 지루한 목표들로 삶을 채우는 건 이제 충분하다 생각한다. 이제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핏에 맞게 새롭게 기획하여 살아가자. 나에게 하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