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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Aug 28. 2022

1950년과 2022년의 우연한 만남

비비안 마이어전

우연히 유명해진 작가가 있대. 그 전시 보러가자.


모처럼 둘이 나선 나들이길, 남편은 보고 싶은 전시회가 있다고 했다. 바로 비비안 마이어전.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본 적 있는데 잘 모르겠네. 우연히 유명해졌다는 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오늘 우리가 만나러 간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는 1926년에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그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모델을 담은 사진을 남겼지만, 그걸 인화해서 누구에게 보여주고 사진가로서 전시회를 하는 활동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말년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서 필름을 비롯한 자신의 물건을 경매에 내놓았고, 그걸 2008년에 어느 청년이 헐값에 사면서 그의 사진이 그리고 생애가,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경매에서 산 그의 사진에 호기심을 갖고, 그의 생애 전반을 들여다 본 이들은 그가 공개한 적 없는 필름을 인화해 sns에 올렸고, 이 사진들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3년에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개봉했고, 수상엔 실패했지만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고.

스토리가 재미있는 작가라더니 과연 그렇다.


들어가서 작품을 보다 보니 그는 정말 온 생애 동안 사진, 영상을 찍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그는 생애의 상당 기간 보모로 일했는데 아마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의 마지막을 돌본 것도 그가 돌본 아이의 가족이었다고.


뉴욕에서 연 비비안 마이어의 첫 전시회는 '어느 전시회보다 많은 사람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고, 영화로 만들어지고 한국에도 찾아왔다.


일요일 오후, 그의 작품을 보러 온 한국 사람들이 많다. 전시회 입장료가 1만8천원으로 싸지 않은데도 기꺼이 그의 사진을 보러 오겠다고 선택한 관객들. 2009년 세상을 떠났다는 그는 이 광경을 예상했을까. 박스 테이프에 꽁꽁 싸여 있던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세상에 나올 거라는 걸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물건을 사들이고 영화까지 만든 존 말루프는 "나는 물건에 대한 강박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사진은 물론 세상과의 소통 창구인 신문 등등을 그대로 남겨둔 저장 강박과 물건 강박은 2022년의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나는 사진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한 가지면에서 참 신기하긴 하다. 사진 속 피사체들의 표정이 어쩜 저렇게 자연스러울까.


종종 기사용 사진을 찍을 때가 있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무리 자연스럽던 사람도 약간 경직되곤 다. 그러면 자연스럽지가 않아 쓰기 힘든 사진이 된다.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 속 전문가는 그의 카메라 특성이 이를 도왔을 거라고 했다. 눈에 대고 찍는게 아닌 허리춤에 놓고 올려보는 식으로 찍은 롤라이플렉스. 렌즈를 바라보게 하지 않으니,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할 수 있게 했을 거라고.

비비안 마이어는 셀피, 자화상으로 유명하다. 전시회 곳곳에 그처럼 셀피를 체험할 수 있는 스팟이 있다 by 슬리피언

오랜만에 전시회, 전혀 모르던 사진가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눈을 통해 1950년대의 뉴욕을 들여다본다. 1950년을 호기심 많은 2000년대의 청년 덕에 보게 되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오지랖을 부려준 청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50년대에서 우리를 찾아온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오는 11월까지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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