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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Sep 03. 2022

남편, 우리 좀 떨어져 있자

몸에 안 좋아.

*오늘 글은 뜬금없는 금슬 자랑질로 보일 수 있습니다. 주접을 보기 힘든 분들은 살포시 뒤로 버튼을 누르셔도 좋습니다.


나와 남편은 잘 지낸다. 같이 산지 15년, 만난지는 2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다툼도 거의 없고 서로 좋아라 한다. 연애할 때부터 아는 사람들은 "참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고 놀리곤 한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우리가 손잡고 붙어다니는 걸 화제삼는 이웃들이 있었는데, 어떤 언니는 우리 윗집 언니에게 농반진반으로 "쟤네 정상적인 부부 아니지?불륜커플 아니냐"고 물었대서 빵 터졌던 적이 있다. 왜 우리나라에선 부부금슬 좋은 게 입길에 오를 일인지 참 모를 일이다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이유는,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얼빠(이상형으로 외모가 우선순위인 사람) 딸내미는 가끔 "엄마, 아빠는 안 잘생겼는데 왜 결혼했냐"고 하지만(미안해 , 남편. 내가 대신 사과할게), 나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어서 결혼했다.


그는 믿음이 가는 사람이고, 진중하고, 이성적이다. 생각이 깊다. 감정기복도 적은 편이어서 내가 흥분했을 때도 같이 잘 안 말려서 다툼이 적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좋다고 잘 표현한다. 일관되게 잘해주고, 나를 좋아한다는 괜찮은 사람이 싫을리가.


하지만 좋은 금슬이 가끔 몸에는 해롭다.

문제는 이거다 by 슬리피언

일단 우리는 둘이 술마시는 걸 너무 좋아한다. 사실 연애 4년, 결혼 3년차 정도 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단둘이 있을 때 술을 마신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신혼여행 때 미니바가 무료여서 양주폭탄주를 만들어 먹은 것 정도가 둘이 술마신 기억의 거의 전부다.


이유는 각자 차고 넘칠 만큼 마시고 다녔기 때문이다. 요즘은 덜한 것 같지만 기자들 정말 술 어마어마하게 마시고 다녔다. 끼니마다 술 마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실상 진단만 안 받았지 알콜 중독인 사람도 많다. 접대 is 술이었던 게 그 업계다. 요즘은 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니 둘이 있을 때까지 술마시는 게 싫다고 남편은 내가 와인이나 맥주를 집에 사다두는 것도 싫어했다.


하지만 각자 사회생활 15년차가 넘어가면서 우리는 싫은 술을 받아먹진 않아도 될 정도로 '짬'이 찼다. 그러다보니 술 마시는 것 자체가 싫진 않아졌고, 술마시면 예민했던 기분이 이완되는 맛을 알게 되면서 제일 편한 우리끼리 술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술마시는 핑계는 뭐 밑도 끝도 없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안주가 있어서, 바람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첫눈처럼 내게 오겠다는 도깨비처럼 다양한 이유로 술을 마신다.


요즘은 술이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맥주 한캔에서 시작된 술은 소주로 전통주로 와인으로 양주로 사케로 자꾸만 범위를 넓혀간다. 새로운 술을 마셔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잠깐, 이게 남편이 좋다는 건지 술이 좋다는 건지..


뭐 암튼 또다른 문제는,

남편이랑 있으면 일이 잘 안 된다. 떠드느라고. 남편은 굿 리스너다. 잘 들어주는 사람. 자꾸자꾸 얘기하느라고 뭘 못한다. 연애할 때 잠깐 장거리연애였던 적이 있는데 2주만에 한번쯤 만나면 할 얘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한 세 시간 동안 끊임없이 떠들었더니 "너 진짜 대단하다" 폭소를 했던 날도 있었다.

두 개씩 쓴 날 남편이 없다는 것을 밝혔으니 이제는 하나씩만 써야겠다

내가 브런치 시작하고 어떤 날은 글을 하루에 두 개 쓴 날도 있는데, 그날은 다 남편이 오래 없던 날이다. 그나마 돈 받고 하는 일은 이제 안 하니, 이건 다행이다. 하지만 남편이 오래 없다면 어쩌면 대하소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걱정이다. 붙어있는 게 서로에게 득이 돼야하는데,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인데 이렇게 몸에 안 좋은 짓만 죽이 맞아 해대니. 어디 장거리 연수라도 보내야하나.


사실 건강에 문제만 안 생긴다면 이게 참 재밌는데 말이다. 참 죽이 잘 맞는 인생 동무랑 좋아하는 술이나 마시면서 수다나 떨고 살면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닌가.


그나저나 나는 대체 왜 휴일에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까.


그렇게 죽고 못 산다더니, 친구들이랑 남자들끼리 캠핑이나 떠난 남편(이런 날을 위해 약을 친건가)이 없어서 또 브런치에 주절주절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이게 붙어 있어서 좋다고 쓴 글인지 나만 두고 떠난 남편이 어이없다고 쓴 글인지 모르겠다. 글이 뭐 맥락도 목적도 없고 참 그러네. 독자분들껜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게 다 절 두고 혼자 놀러간 저희 남편 탓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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