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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n 29. 2022

신문 보기 힘드네

신문 구독 성공기

내가 어릴 적 아빠들은, 특히 지하철로 직장 오가는 분들 손에는 신문이 들려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시절, 신문은 그들의 무료함을 달려줬을 것이다. 나는 신문사에서 일했는데도 신문을 들고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결혼하고 한동안 남편의 제안으로 신문을 봤는데 나와 남편은 저대로 바쁘고 내 아이들은 두 세살로 신문을 볼 리도 없으니 무거운 폐지로 한참을 있다가, 결국은 '신문사절'로 이어졌다.


그냥 볼까 하는 한줌의 미련이 있긴 했지만 고정생활비 중에서 쓸데없는 걸 좀 줄여보자 했는데 몇 가지 후보 중 얘를 제일 먼저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째 펼친 자국도 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뭐, 사실 오래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다시 신문을 구독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역시 남편의 제안이었다. 이번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뉴스 보는 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참이었다.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 가르칠 게 뭐가 있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종종 중고등아이들 대상으로 한 진로교육에서 몇 번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우리 아이들에게는 '매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매체의 홍수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건 그냥 일상생활이니, 그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따로 알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아이들이 믿어도 될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에 대한 구분이 없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N뭐라는 거대 포털을 통해 기사를 접했다. 그 기사를 거기에 제공한 매체가 따로 있다는 걸 아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N이 기사를 직접 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H일보 홈페이지 화면 캡처. 홈페이지가 생각보다 깨끗하다.


기자 일반을 '기레기', '기더기'라는 멸칭으로 일컫는 시대에 그게 뭐 별일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보를 내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장치, 흔히 말하는 데스킹이 이뤄지는 매체와 그렇지 않은 매체 정도는 우리가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그나마 데스킹을 하는 매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매스미디어들이다. 몇 가지 경험을 통해 나는 이들을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 나도 보지 않는 매체들이 있고, 이들의 정치적 편향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최소한의 필터링을 거친다. 이 말은 이 최소한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기사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지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이름을 걸고, 그러니까 바이라인이 걸린 기사를 보아야 하고, 궁금증이 생기면 그 기자에게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 뭐 이런 간단한 것들부터 시작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서 아이들이 덜 허우적거리게 도와주고 싶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신문 구독을 결정했다. 그런데 그 흔하던 지국이 없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봉투를 들이밀며 '신문하나 보세요'하는 아저씨에게 째림을 날린 기억도 없다. 어떡하지?


일단 남편이 신문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독을 신청했다. 그런데 그 후로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다. 함께 적힌 전화번호도 연결되지 않았다.

지역맘카페에 지국을 수소문했고,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지만 지국 전화번호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보려는 신문이 그나마 부수가 많은 이른바 조중동도 아니다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한 지국에서 여러 신문을 한번에 배달하는 것 같다는 정보 정도를 얻었다.


아니 신문 보는게 이렇게 힘들다고? 주간지를 구독해야하나 하다가도 이미 구독하는 잡지가 세 개나 되다보니 그냥 보지 말라는 뜻인가 싶어 포기하려고 할 때쯤 남편에게 연락됐다는 공지를 받았다. 그리고 잔뜩 흐려진 오늘 아침, 곱게 비닐에 싸인 신문 한 부를 집앞에서 발견했다. 이게 뭐라고 새삼 반가운지. 신문 보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암튼 우리는 그렇게 신문 구독에 성공했다. 무려 한 달 2만원을 주고. 무려..라고 썼지만, 이거 아마 배달비도 안 나올거다. 신문사들은 비용 때문에 배달 부수를 늘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연간 한두 번씩 부수 확장을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참 세상이 많이 변했지..


이전에 신문 본 것이 아이들 유아기라 큰애는 신문을 낯설어했다. 살짝, 아아주 살짝 관심을 보이긴 한다. 이제 이걸 들고, 아이와 세상을 같이 바라보고 싶은데, 너무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구독에 성공하고보니, 언젠가 또 신문을 끊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옛날처럼 '사절'이 힘들까, 그것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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