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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l 07. 2022

학군지 학원 클라스가 이런 것인가?

방학을 앞두고 문자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학원들의 '입시설명회'를 겸한 '방학특강 설명회'다. 중1짜리 큰애를 두고 있지만, 워킹맘이라는 단어를 방패처럼 두르고 있던 나는, 회사를 그만둔 지금이야말로, 뭘 좀 하는 척 해야 한다고 생각해 무려 우리나라 투톱 학군지에서도 꽤나 유명한 입시학원의 설명회에 과감하게 신청 문자를 날렸다.

어릴 때부터 달리지 않으면 인서울이 어렵다니 정말 무서운 대한민국이다. 픽사베이

우리 동네는 그 동네와 꽤나 멀리 떨어져있지만, 듣자하니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일찌기는 초등 때부터, 고등은 뭐 당연히 '라이딩'으로 그 동네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아니 저 먼데를 특강도 아니고 평소에 다닌다고? 그게 가능해? 하고 맵을 들여다보니 지하철 입구까지만 해결하면 우리 동네에서 셔틀 타고 학원 가는 것보다 소요시간이 짧았다. 셔틀은 애들 태우느라 뺑글뺑글 돌아가니까.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대단하군.


설명회는 오전 11시부터였는데 시간 맞춰 갔더니 50석 정도 돼 보이는 강의실이 꽉 차있었다. 한 선생님이 이번 여름 특강 구성의 특징 등에 대해 설명 중이셨고,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엄마들의 열기였다. 한 글자라도 놓칠까봐 다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필기도 열심이었다.


오, 새로운 세상이군.. 다시금 놀라며 집으로 왔다. 그런데 이 학원은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했다. 저녁 때 전화가 와서 "어머님, 오늘 설명회 듣고 뭐 더 궁금한 것은 없으신가요?"


학교 적으라고 해서 적었으니 그 동네 사람 아닌 것도 알테고, 그럼 등록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지 않을까? 그런데도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다 전화를 해서 궁금한 걸 체크하다니. '이것이 학군지 학원의 크라스인가!'


사실 우리 동네 인근에도 학원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기어이 학군까지 보내는 엄마들에게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관리"를 꼽았다. 어떤 엄마는 "선생님들이 학부모를 대하는 게 달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듣자하니 교육열이 높고, 그만큼 관심이 많은 엄마들을 상대하다보니, 허투로 말하면 힘들어지고, 그러다보니 수업도 더 꼼꼼히 준비하고, 상담 때도 꼼꼼하더라는 얘기였다.


전화를 받은 김에 얼마 전부터 어디서 '과학고' 이야기를 주워듣고 와서는 거기 가고 싶다던 둘째를 떠올리고 '특목고' 이야기를 여쭤봤다. 선생님은 원래 지난 정부에서는 외고, 자사고를 폐지한다더니 정부 바뀌었다고 존치 가능성이 생기면서 부모들이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고' 진학에 필요한 여러가지를 말씀해주셨다. 그러면서 선행진도를 물어보셨다.


"아, 선행 속도가 좀 빠듯하네요."

우리가 사교육에 발을 좀 늦게 들인 것은 사실인데 둘째는 그렇다고 보기도 힘들다. 누나따라 엉겁결에 수학학원을 일찍 등록하는 바람에 선행을 일찍 시작한 게 되어서, 동네에서는 얘가 들어갈 학원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둘째 수학 선행 속도가 늦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오, 이것이 학군지 클라스인가." 나는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학고는 사실 수학고라고 들었다. 픽사베이

선생님 설명은 이어졌다. "어머님, 과학고 입학이 목표는 아니잖아요. 우리 목표는 대입이죠." 헐, 맞는 말씀이지만 정말 낯설고 어색하군요. 날고 기는 수학잘하는 애들이 모일 과고에 입학하더라도 안 쳐지고 따라가려면 고등 수학을 거의 마치고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오, 맙소사. 과학고는 수학고라더니. 둘째야, 우리 그냥 집앞 학교를 가자꾸나.


그렇게 초5짜리에 대한 진지한 입시 상담이 끝나고 나서야 이날의 설명회가 진짜로 마무리되었다. 학군지 학원 설명회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열심'이라는 것이다. 엄마들은 물론 학원도. 애들 머릿수가 곧 돈이라는 학원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한다면, 그 부분은 인정받을 가치가 있고, 아직 가지 않은 학생의 상담도 나름 열의를 가지고 해준다는 점은 인정해줘야할 것 같았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잡지 않은 물고기라 그럴 수도 있다"는 지인의 조언도 있었다. 당장은 그쪽 학원을 보낼 생각은 없어서 이 부분을 확인하기는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사교육의 대한민국, 그것도 내로라 하는 사교육 중심지에서의 첫경험은 나름 인상적이었다. 최소한 우리가 직면한 입시 현실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하거나 선행 속도를 더 내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이는 그냥 자기가 잘하는 줄 알고 컸으면 좋겠으니까. 아직은 입시 팩트의 폭력은 내가 감당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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