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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l 06. 2022

별걸 다 모르는 아이들

화낼 거라면 차라리 생색을 내보아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르는 게 생각보다 많다는 걸 배우고 있다. 특히나 모르는 것 중 하나가 감사한 마음이다. 아이가 하나둘인 요즘 시대에 부모들은 대체로 가족 내 누구보다 아이들이 우선순위다. 늘 자기가 우선인 삶을 살다 보면, 아이들은 감사한 마음을 배우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심한 경우, 부모는 욕구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지 않나. 자꾸 "난 됐어. 이거 싫어"하면 우리 철없는 자식들은 또 그 말만은 착하게, 청개구리들처럼 그대로 알아듣는다.


사실 세상에 나가면 알게 되긴 한다. 근데 종종 이게 "아, 내가 집에서 잘 대우받았구나" 하는 게 아니라 "왜 세상이 날 대우해주지 않지?"로 흐를 때가 있다. 그러기 전에 "니가 집에서 받는 대우가 황송한 것"임을 알려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게 비단 아이들만 모르는 게 아니니까.


기자라는 직업이 워낙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 역시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알만한 사람이다. 하루는 그 사람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홍보팀 사람들에게 "아유, 홍보팀 맨날 남의 돈으로 술마시고 좋겠네"라고 말하는 걸 봤다. 전날 홍보팀이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를 놓고 하는 말이었다.


그 사람, 누구를 민망하게 만들려고 한 말이었을까? 비아냥거린 걸까? 나름 몇 년을 봤는데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철이 없는 거였다. 그 사람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자기가 이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이 사람들은 자기가 버는 돈으로 좋아하는 술을 많이 마시니까 좋을 거라고.


홍보팀들은 뭐,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고 씁쓸한 얼굴로 웃고 말았다. 그런데 대체로 좋은 게 좋은 편인 나는, 그날은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문득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원해서 술 먹는 자리가 몇 번이나 되겠냐"고. "다 누구 씨 잘되라고 싫어도 진상들 데리고 술 먹는거죠~" 물론 기분 나쁠까 봐 최대한 헤실헤실거리면서 말했다. 철은 없지만 눈치는 빨랐던 그 사람 얼굴이 약간 빨개졌다. 그리고는 특유의 넉살로 뭉개면서 "아, 그런가? 아, 그건 내가 또 몰랐네~"라고 웃었다. 참 해맑았던 그이. 지금도 그 사람 가끔 티비에 나오는데 여전히 악의가 없지만 철도 없다. 그래도 자기 도와주는 사람들 고마운 줄은 이제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만 그런 건 아니었다. 연예인, 유명인들 중 많은 이들이 예뻐서, 잘 생겨서, 운동을 잘해서 어렸을 때부터 황송한 대접을 받고 자란다. 아무도 그에게 "잘났으면 잘난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진 않았겠지만,다른 이들의 호의는 당연한 것이고, 자기를 돕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통 별 생각이 없다. 그들이 자기가 버는 것에 수십 분의 일, 혹은 수백 분의 일의 급여를 받는다는 것도 별 관심이 없다. 못된 것보단 모르는 거다. 일로 만난 사람들 중에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쳐 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유 같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알고, 그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엄마로서 참 신기하고 부럽다. 아유, 저 집 자식 참 잘 키웠네

아이들은 그래도 어른들보다 얘기해주면 잘 듣는다. 픽사베이

어른들도 그러는데 아이들은 더 하지 않겠나,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문득 여유로워지면서 내가 잘 가르쳐줘야지 싶어진다. 감사한 마음 갖기, 미안하다고 말하기 등등 생각보다 아이들은 정말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라고 뭐 어릴 때 얼마나 그런 것들을 잘 알았을까 싶다. 그런데도 종종 어른들은 이 문제로 화를 낸다. 솔직히 나도 아이가 어릴 때, "넌 왜 엄마가 널 위해 이런 걸 해줬는데도 감사한 줄 모르냐"고 화내 본 적이 있는데, 아이의 놀란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자기는 정말 몰라서 그랬는데 엄마가 화를 내니까 아이는 그저 당황스러웠던 거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생색을 낸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준 일들을 얘기해준다. "누구야, 이거 니가 이거 필요하다고 말해서 엄마 아침부터 바빴어. 고맙지?" 그러면 아이가 고마워한다. 사실 너무 자주 그러면 아이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 "누군가 널 위해 뭘 해주면 감사한 마음을 갖자"고 돌직구로 가르쳐주는 게 젤 나은 것 같다. 아이들은 아직 '꼰대'를 잘 몰라선지 가르쳐주면 잘 들어준다. 그동안 이 부분을 생략하고 화부터 냈던 건 아닐까. 고마워할줄 모른다고 가끔 나한테 화를 내던 내 부모님들도 이걸 가르쳐줘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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