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2호기 표정이 읭? 했다. 누나가 나를 신경쓴다고? 나를 자랑해? 집에서 맨날 나한테 시비나 걸고, 귀찮게 구는 그 양반을 말하는게 맞습니까, 어머니?
우리집 두 아이들은 두 살 차이다. 너무 닮은데다 둘째는 크고 큰애는 작아서 종종 이란성쌍둥이로 오해받는 누나동생 남매다.
한 배에서 나와도 아롱이다롱이라고 했던가. 두 아이들은 정말 다르다. 큰애 6살 때였나. 둘이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한 선생님이 "어머니 어쩜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낳으셨어요?"라며 웃었다.
정말 그랬다. 큰애는 경계심이 높은 애였다. 낯가리는 애였다는 말이다. 기관을 옮기면 일주일이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딱 일주일 뿐이었다. 일주일만 잘 버티고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발로 잘 걸어들어갔다. 뭘 해도 무난하고 무던한 아이였다. 신생아 때부터 잘 잤고, 건강이든 기관 생활이든 한 번도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없는 친구다. 특별히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모자란 것도 없이 딱 K맏딸 스타일이다.
둘째는 정반대였다. 매 해 나를 놀래켰다. 폐동맥협착, 아토피, 틱 등 영유아검진 때마다 나를 놀라게 했고, 갖가지 에피소드가 많은 애였다. 겁은 많은 것 같은데 호기심이 겁을 이기는 애라 길거리 공연에서 마술사 아저씨가 "저 좀 도와주실 분?"하면 일등으로 손들고 나가는 애였고, 어린이집에서 금연수업한 날은 단지 한켠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남자분에게 쫓아가서 "아저씨 담배피면 수명이 줄어든대요. 담배에는 타르를 비롯한 백 여가지 유해성분이 들어있고 어쩌고 저쩌고"를 떠들어서 정신없이 달려가 뒷덜미를 잡아 끌고 온 적도 있었다. 한번은 누나랑 심부름 내보냈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애들에게 "교회 다니라"고 하신 모양이었다. 둘째가 "우와, 아주머니 저는 하느님을 본적이 없어서 못 믿는데 아주머니는 어떻게 믿으세요"로 시작한 질문 공세를 퍼붓는 바람에 큰애는 둘째를 모르는 척하고 멀리 떨어져 걷다가 질문에 시달리다 못한 아주머니가 도망가고 난 다음에야 "야, 너는 도대체..."하며 애를 끌고 집으로 들어온 적도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애정의 표현 방식도 정반대라는 것이다. 1호기는 츤데레다. 투덜투덜하면서도 할 건 다 해주는 츤데레. 제 동생에게 이런저런 시비를 걸면서도 장보러 같이 가면 "엄마, 2호기가 저거 좋아하는데" 하는데 정작 집에 와서는 그걸 들고 제 동생 눈앞에 흔들면서 "이거 사왔는데 내가 먹어야지~"하는 애다. 물론 안 먹을 거면서.
반대로 2호기는 애정의 표현 방식마저 고지식하다. 사랑하면 표현해야죠. 무슨 공익광고 홍보대사마냥 키가 나만해진 지금마저 나를 물고 빨고 매달린다. 애정이 있는 사이에 저런 놀리고 놀림받는 장난은 얘한테 그런건 그냥 없는 거다.
우리집 관계를 잘 나타낸 사진.엄마에게 매달린 둘째와 걔를 붙잡고 장난치는 큰애. 슬리피언
그런데 의외로 어릴 적 둘은 전혀 싸우지 않았다. 나는 둘이 잘 지내니 그저 좋아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둘째의 인내심 덕이었다. 싫어도 싫다고 하는 법 없이, 그저 가족은 서로 사랑해야 하니 누나의 장난이 싫어도 참아주던 둘째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것은 초4 무렵이었다. 어느날 영화를 보러 나간 길에 늘 그렇듯 누나의 장난을 묵묵히 참고 당해주던 둘째가 정색하고 화를 냈다. "아, 그만 좀 하라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으으음... 1호기는 물론 우리도 '어쩔' 이런 표정이었다. 침묵은 1호기가 깼다. "야! 너는 내가 그렇게 장난 좀 한 거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우리는 여기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의 인내심은 몹시도 높은 반면 그게 한번 터졌다는 것은 이제 바닥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뭐가 문제지? 뭐부터 해야하지?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과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아이들이 서로 오해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 느낀 점을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기로 했다.
큰애는 "요즘 2호기가 네가 장난을 많이 치는게 쌓여서 힘들어했어"라고 했더니 깜짝 놀랐다. 크면서 점점 활발해지고 장난이 일상이 된 녀석은 동생도 자기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지, 사실 애들이 장난도 치면서 사는 거지. 그런데 너도 니 동생 좀 알잖아? 걘 좀 FM이라고. 너의 츤데레 방식은 그 애에게는 좀 무리인데가 있어. 니가 걔보다 융통성이 좋은 편이니 눈치 좀 봐서 해보자. 나름의 충격을 받은 이 녀석은 일단 협조를 약속했다.
"누나가 장난 많이 쳐서 힘들었구나? 그렇게 화가 나는 줄은 몰랐네." 둘째는 아직 화가 나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표현 방식이 다른데 너랑 누나는 남매지만 특히 많이 달라. 누나가 사실은 네 생각 많이 하는데 잘 모르지?" 둘째는 "누가 내생각을 한다고?"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전에 태권도학원에서 어떤 형이 네 흉봐서 누나가 막 뭐라고 해주고 왔는데 기억 안나나?" 어릴 적 큰애도 같이 태권도장 다닐 때 일이었다. "엄마랑 누나랑 편의점 가면 누나는 니가 좋아하는 걸 따로 골라. 누나가 엄마보다 니가 좋아하는 걸 더 잘 알던데." 내가 전업으로 일하던 시절, 둘이 워낙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사실 둘은 서로를 제일 잘 아는 사이이기도 했다. 이때는 미운 마음이 많아서 이런 생각은 가려져 있었겠지만.
별건 아니지만, 누나가 제 편 들어주고, 저 좋아하는 것 찾아다줬던 케케묵은 어릴적 얘기까지 실어날랐더니 그래도 둘째 표정이 조금 풀렸다. "누나가 장난기가 많긴 하지만 널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냐. 그래도 너무 많이 장난하면 니가 힘들어한다고 누나한테 얘기했어. 누나는 잘 몰랐대"했더니 이번엔 "그걸 몰라?"하는 표정이다. 아들아, 세상에는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단다. 애정을 네 누나처럼 표현하는 사람도 많고. "싫은 건 너도 그때그때 표현할 필요가 있어. 참는다고 늘 좋은 건 아니거든."
어쨌든 누나는 동생이 자기 장난 때문에 자기를 싫어할 정도로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았고, 동생은 누나가 자기가 장난치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 엉킨 자국이 남긴 했지만, 엉킨 실타래는 일단 풀린 셈이다. 몰라서 그랬다는 것만 알아도 감정은 살짝 가라앉는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한배에서 나왔대도 새끼들은 다 제각각이다. 알아서 잘 지낼거라는 기대는 무리다. 픽사베이
전에 어느 다큐프로그램에서 봤는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은 천륜이라는 말처럼 본능적인 부분이 있는데, 동기간의 애정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더 크다고. 그래서 부모 자식 관계는 좀 싸워도 회복이 잘 되는 편이지만, 남매간에는 앙금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부모 자식 관계보다 훨씬 돌아서기 쉬운 관계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부모를 공유한 동기간에게 애초에 남인 사람들과 다른 정이 없기야 하겠나. 남이라도 그 정도를 공유하면 미운 정이 들텐데.
다만 나와 남편은 우리집 두 남매가 혈연이니 알아서 잘 살리라는 기대를 접어두기로 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으면 꼭 같이 얘기해서 풀고, 서로의 선이 다른만큼,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지키자고 가르쳐주기로 했다.
'찐남매=치고박고'인 것으로 여겨지는 이 관계에서 우리의 저런 개입이 다툼을 완전히 없앴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다만 아이들은 조금씩 서로의 표현 방식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여전히 짜증나면 쪼르르 달려와서 이르기도 하지만.
어젯밤 유난히 시원한 밤바람에 산책을 하쟀더니 1호기는 귀찮다하고 2호기는 벌써 신발신고 나간다. "누나는 왜 안 따라와? 누나 데려가야 재밌는데." 짓궂은 누나를 찾는 2호기의 질문이 반갑다. 너, 누나 없으니까 허전하구나? 미운 정도 정이란다 이놈들아. 아유, 이 정말 별걸 다 모르는 것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