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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n 27. 2022

지금 되게 무례하신 거예요.

무례한 이들에게 알려주기

당신은 누군가에게 '무례하다'고 말해본 적이 있나? 나는 해봤다. 아마 살면서 마음 속으로 천이백만번쯤 해본 뒤에야, 그제야 나왔던 것 같다.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하다고 말하는 것도 잘 하지 못한 채로 '순딩이'로 살던 내가 '당신 무례하다'고 대놓고 말한 것은 마흔이 되어서였다.


나는 순딩이였다. 우리 부모님은 나 키우면서 한 번도 속썩은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봐도 진짜 그랬다. 알아서 공부하고, 학교-집-학교-집에 최고 명문대는 아니어도 인서울 4년제에 남보기 그럴듯한 직업도 가져봤다. 그러면서도 싫다, 아니다를 얘기하는 법을 몰랐다. 그러니 나는 불편하고, 내 주변인들은 편안한 삶을 살아줬다.


내 직업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이었다. 살다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참 세상에는 별 사람이 다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예술, 체육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어릴 때부터 그 일만 하고 살아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지도 잘 모른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일은 순둥이인 나한테는 잘 안 맞는 직업이었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6년 내내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왠지 좀 크고 보니 더 그럴듯한 직업이 갖고 싶어져서 진로를 틀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선생님이 됐으면 덜 고생했을 것 같다.


뭐 이건 지금와서야 드는 생각이고, 어쨌든 나는 되고 싶은 것이 되었다. 문제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버티기에 내가 너무 '순딩이'였다는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무례하게 구는지도 모르고 무례한 사람들에게 무례하단 말을 해야된다는 생각도 못하고 나는 한달을 징징 울면서 회사에 다녔다. 이후에는 그냥 그럭저럭 적응하고 다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젠틀과 진상 사이를 오가면서 어쩌면 나도 제법 진상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아이가 크고 나서다. 순딩이는 순딩이를 낳았다.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예스맨. 둘째가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참으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약간의 불안 증세를 나타내면서 우리는 아이를 위해 심리 검사를 받았다. 부모 양육 검사를 통해 나 역시, 남편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결심했다. 내가 느끼는대로 말하지 못하면, 얘도 그걸 못 배우겠구나. 얘도 평생 거절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놓고 살겠구나. 그래서 나는 조금씩 거절하고, 조금씩 화내기 시작했다.


최근의 나는 자기 스스로의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 이후 나는 많이 변했다. 훨씬 가벼워졌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게 됐다. 나는 좀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됐고, 싫으면 싫다고 더 많이 말하게 됐다. 물론 타고난 기질을 이길 수는 없다. 한 30%쯤 더 거절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가벼워졌다. 싫은 것을 30%쯤 안해도 된다는 얘기니까.


나는 누구에게 최초로 '무례하다[고 말했을까? 자기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줄 수 있는지, 연결될 때마다 쏟아내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좋은 의도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 과장이었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 천천히 했으면 좋겠다고 통화할 때마다 말했다. 직접 만난 자리에서 그는 나와 동료들에게 짜증을 냈다. 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다른데선 자기에게 어떻게 해주는데 니네는 이게 뭐냐고, 하도 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해서 만난 자리에서 다른 곳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짜증을 냈다. 나는 40년 인생 최초로 "당신은 무례하다"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와 같이 온 사람이 그를 말렸다. 당신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그 뒤는 뭐 애매모호했다. 엄청난 싸움이 일어나거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 않고, 자리가 대강 정리됐다. 그는 실망한 것 같았고, 나는 시원했다. 아, 이 사람과 더이상 연결되지 않겠구나.


무례한 사람에게 그렇다고 말해도, 별로 큰일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사람이 다 다르니 내 머리끄댕이를 잡는 사람도 생길 수 있겠지만, 살다 뭘 그런 일 한번 겪을 수도 있지. 집에 가서 잠잘 때마다 며칠 동안 그때 무례하다고 말해줄걸이라며 허벅지를 내리치는 것보다, 머리끄댕이를 뜯는게 훨씬 시원하지 않겠나?


세상에는 내 아이들과 나같은 순딩이들이 천지다. 그들은 여전히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봐 자신의 감정이 상하는 것을 꽁꽁 싸매두고 모르는 척하면서 살아간다. 나도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렇게 안 살면 잘 못살게 될까봐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해보니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무례한 사람하고는, 나한테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무례한 사람하고의 관계는 그냥 끊는 것이 맞았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없는 관계인 사람도 있다. 그러니 그래도 되는 관곈데 무례한 사람은 꼭 끊어야 한다.


나에게, 내 아이에게 주문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무례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무례한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 알려줘라. "당신은 정말 무례하다." 그게 우리가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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