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이게 말이 되나?
매일 반복되는 특별하지 않았던 회사에서의 오후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지 마자 들리는 아이의 울부짖음,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친정엄마의 고함소리.
나의 패닉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엄마! 엄마! 빨리 와줘!!! 할머니가 소리 질러!!!",
친정엄마는 "내가 어린애라서 이쁘게 보려고 했는데, 어? 너? 뭐라고 했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눈앞이 깜깜해졌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달랬다.
트리거
난 회사에 있어서 당장 달려갈 수도 없었고
당장 간다고 해도 물리적인 거리가 있기에 족히 한 시간은 필요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는데
그중 하나가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었다.
엄마의 폭행이 있을 때, 나는 아빠가 빨리 퇴근해서 말려주기만을 기다렸다.
어떤 이슈로 폭행이 시작되면 그건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며칠간 지속되곤 했다.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친정아빠가 퇴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30분,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는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그때가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퇴근을 했다.
이 상황이 나에게는 두렵지만 나는 아이의 엄마였고 딸이었기에
내 역할을 해야 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고혈압으로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도 걱정이 됐다.
나에게 폭포수처럼 쏟아부으셨다.
들어보니 오늘 사건은 오랜만에 집에 온 할머니를 보고 손녀가 한 말에서 시작되었다.
딸아이가 "할머니 왜 왔어?"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너 딸 참 잘 키웠더라. 아주 대단해. 나를 지 몸종처럼 부려먹어.
내가 빨대 찾다가 허리 다친 것도 걔 때문이야.
니들이 평소에 나 없는데서 얼마나 날 무시했으면 애도 나를 무시하니.
이제 너네 집 절대 안 간다. 내가 무슨 말을 들으려고!"
그전에 집에 안오기 시작했던 것은 동영상이 문제였다.
나는 동영상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틀어주지 않았는데,
언제나 그랬듯 할머니는 애가 보고 싶을 수 있다고 몰래 틀어주고 있었던 것.
동영상을 더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는가.
등교준비, 식사 등 집중하지 않고 동영상을 더 이상 틀어주지 않으면 신경질을 부리는.
인지부조화
나도 알고 있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한 말은 충분히 섭섭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 아이의 말은 '오지 말지 왜 왔어?'의 뉘앙스가 아니라
'어쩐 일로 왔어?'의 뉘앙스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설사 전자의 의미였다고 해도 아이를 훈육할 일이지
감정을 실어서 소리 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아이이고 어른은 어른인 이유가 있지 않는가.
아이의 사과
나는 집에 들러 아이와 이야기를 했고
상대방을 배려해서 대화를 해야 하며 어른에게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할머니가 마음이 많이 상하셨으니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자며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아이는 울며 할머니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친정엄마가 짠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그녀를 조용히 안아줬지만 나를 뿌리쳤다.
이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갔고 이것으로 끝이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