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정엄마의 학구열
우리 엄마는 늘 “배우는 게 최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시절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개 그러했듯,
어렵고 궁핍한 유년 시절을 보낸 엄마는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어 하셨다.
요즘은 집에서 아이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도 가정폭력이라 여기지만,
내가 자라던 80~90년대엔 ‘사랑의 매’라는 말로 어느 정도 정당화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큰 반항 없이 그 시기를 지나왔지만,
내 아이를 키우면서 슬그머니 엄마의 모습이 내 안에서 나타날 때
문득 두려워지곤 했다.
아이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부터 구구단을 외우게 하시고,
내가 아이 공부에 느슨하다고 종종 지적하셨다.
예체능 학원을 보내면 “그런 건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이러다 나도 아이에게 엄마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올 때,
아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만큼
친정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집 처분 문제도 있었고, 결국 잠시 머물다 다시 해외로 나가게 되면서
그대로 친정 가까이 있는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불편한 시작
문제는 아이를 돌보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4년 만에 복직을 했고, 신랑도 새로운 업무로 바쁜 시기였다.
그렇지만 아이는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무엇보다 엄마와 떨어져 혼자 부딪히며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께도
“아이를 매일 돌보지 않으셔도 되고,
시간 되실 때만 잠깐 봐주시면 좋겠어요”
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하지만 예상대로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으셨다.
여전히 새벽같이 오시고, 하교 시간에 맞춰 또 오셨다.
그러던 중, 몸이 안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재차 “정말 힘드시다면 굳이 매일 오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씀드렸지만
돌아온 건 억울함이 가득한 분노였다.
“돌봐줘도 난리냐!”
화난 목소리에 나도 당황했다.
껄끄러운 기류 속에서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놈의 바나나우유가 뭐라고...
하루는 아이와 마트에 갔다가 바나나우유를 사 왔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가 바나나우유를 마시려 했고
빨대를 찾았다고 한다.
해외에서 들어온 짐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
빨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던 상황.
엄마는 빨대를 찾으려고 식탁 의자에 올라가셨고,
그 위에서 넘어지면서 허리를 삐끗하셨다.
며칠간 움직이기 힘들어 병원 치료를 받으셔야 했다.
속상했다.
빨대가 없으면 그냥 병째로 마시면 될 것을...
숨겨진 마음
며칠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너희 집, 가끔만 갈게.”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스러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혹시 우리가 뭘 섭섭하게 했어?”라고 물었더니
“아니야, 네 말대로 이제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좀 힘들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말투에는 섭섭함, 억눌림, 그리고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