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냈다
만나면 위태로운 관계
아이의 사과 이후 매우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단 한 사람, 아이만 빼고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한국생활동안 더 챙겨주고 싶으셔서,
딸과 손녀와 추억을 쌓고 싶으셔서
친정 부모님은 우리를 계속 부르셨다.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정엄마의 감정 변화를 귀신같이 알아챘다.
생존본능이랄까.
떨리는 목소리, 부자연스러운 톤, 까끌까끌한 단어들..
특히 나는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아이가 또 실수를 할까 두려운 마음에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더 이상 갈등 없이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출국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정부모님의 요청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다른 일정 핑계를 대기도 했고,
조용히 집에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거리가 필요했지만 나에게 그런 자유는 없었다.
내 인생 최초의 솔직한 생각의 표현
이러다 괜한 오해를 쌓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서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그렇게 되길 기대했다.
우리 집 문 앞에서 친정엄마가 나의 거절에 당황하고 화내며 쏘아붙이고 간 후
나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는 좀 힘들어. 자꾸 어렸을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것들이 생각나.
애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애가 뭘 잘못하진 않을까 위태로워.
조금 덜 자주 봤으면 좋겠어. 그래야 관계에 더 좋을 것 같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폭발해 버렸다.
"네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게 내 덕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네가 감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니?
네가 어떻게 감히.
네가 그렇다면 내가 다음에 널 만나면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를 해야겠네"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내가 말을 못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유가 있었다.
항상 친정 엄마의 반응은 예상가능했고 지금까지 난 그것과 싸울 자신이 없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는 동안, 또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컸던 것이었으리..
그럼에도 나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리고
꺼이꺼이 통곡의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