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는 여정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생각을 했다.
막연히 슬프고 상처받았고 무서웠고 화도 났던 나의 감정들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상실의 슬픔
내가 겪고 있는 것은 상실이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의 정체는 한순간에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어버린 것과 같은 상실감.
대학에 갔을 때 혹은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독립을 했었어야 했다.
그 시절 친정엄마는 끊임없이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셨다.
내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음에도 사전에 차단하듯
"독립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독립을 하느냐"
"결혼을 빨리 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입버릇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씨알도 안 먹히겠다 싶었고
갈등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기만 했던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0대 때 했어야 하는 독립을 이제서 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하기도 했다.
차라리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상실을 겪는다면
이것보다는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려웠던 시절, 나름 애쓰고 노력하신 부모님을 이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고통을 외면하고 달라짐이 없는 그분들의 모습에
한없이 실망하기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현 상황을 그냥 혼자 감내하고 지나가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모질게 쳐내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나의 모습.
점점 심해져 가는 나의 상태
상담을 받고 있음에도 불안감과 우울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은 너무 힘들면 약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셨다.
내가 신경정신과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금까지 나는 꽤 단단한 사람이었고
차분하고 침착한 사람이었기에.
많은 생각 끝에 추천받은 신경정신과에 들렀다.
지금 현재 불안과 우울이 높아서 약을 먹어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그렇게 약을 받아왔다.
신랑은 당장 처방받은 약을 먹으라고 했지만
조금 더 버텨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많이 힘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약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은 좀 덜해졌다.
내가 중심이 되려고 결심했다.
그리고 머릿속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원인이 뭐였을까?
모든 건 내가 없었기에 생겼던 문제였다.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것도 나의 잘못이리라.
지금까지의 관계가 부모님 종속적인 관계였다면
나는 이제 내가 중심이 되어보려 결심했다.
나는 연락을 받고 싶을 때 받을 권리가 있고,
나의 의견을 상대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관계 속에서 내가 상처받는다면 잠시 멈출 권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