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 카페를 살펴보다 보면
이런 친구 손절할까요? 이런 부모 손절할까요? 같은 제목이 눈에 많이 띈다.
예전에는 손절이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인간관계의 손절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었다.
당연히 싸워서 사이가 안 좋아지거나 거리가 멀어져서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것을 잘라낸다라는 의미까지 부여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의 효율성을 따지는 트렌드(?)가 반영됐다고 볼 수도 있을까.
그런데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손절, 지나가는 인연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내가 있던 지역에는 주재원이 꽤 많이 있었다.
주재원이라는 말은 그 나라 생활에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말이고
그게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역사회의 특성상 정말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 중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
그때부터 손절에 가깝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혼자 상처를 받았었다.
그중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 여행을 갈 정도로 친했던 이가 있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같이 밥을 먹고 거의 모든 일정을 공유할 만큼 카톡을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그동안 고마웠다는 장문의 카톡을 남기고
그 이후로는 정말 연락을 뚝 끊었다.
서로 삶이 달라지고 공유할 부분이 적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자꾸 섭섭한 마음이 들고
인간관계의 덧없음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끔은 지금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다 그러진 않을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설상 지금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그런 성향의 사람일지라도 지금에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것이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다 덧없으니 애초에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것은
제일 어리석은 사고회로일 뿐.
또 나를 손절한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그것까지 내가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이상 나도 내 에너지를 거기에 쏟지 않는 것으로 나를 지키려 한다.
나아가 손절이 아니라 그냥 나에게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그냥 거기까지인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