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 우리 사이느은
기나긴 서론
코로나 19로 인해 뒤바뀐 세상이 조만간 잠잠해질 줄 알았다. 그것이 내가 2월 말 이후로 브런치에 글을 좀처럼 올리지 못한 이유였다. 이 시국이 잠잠해지면 뭐라도 써 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딱히 더 좋아지지 않았고, 누군가가 '뉴 노멀'을 선포했음을 전공 교수님이 알려준 뒤에야 난 이것이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해 보기로 마음 먹은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이 시국'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고, 그렇게 멈추게 된 것이 새로 들어간 시 합평회다. 사실 완전히 신입 회원이라고 나를 소개하기에는 애매하다. 이 합평회는 2019년 1학기 동안 과 동기 및 후배, 지도 교수님과 함께한 모임이었다. 즐거운 기억을 뒤로하고 난 토론토로 떠났다. 교수님은 떠나는 내게 캐나다에서도 메일로 시를 보내라 하셨지만 그것은 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하고 돌아오면 다시 합평을 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원년 멤버들은 모두 사정이 생겨 모임을 떠났다. 난 모임이 시 때문에 좋았는지 사람 때문에 좋았는지를 분간하려고 애쓰며, 일단은 문학적 글쓰기와의 연을 놓아버리기가 싫어서 얼렁뚱땅 가입을 했다. 가입을 하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카톡방 멤버들을 보며 무서웠지만 막상 모이게 된다니(그것도 모여서 이야기하는 첫 시집은 내가 좋아하는(이라고 말하기엔 잘 모르는) 송승언의 시집이었다) 기대도 됐다. 그러나 그 모임이 코로나로 인해 잠정 연기 되었고, 난 모임을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합평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온라인 모임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단톡방 공지를 통해 들었다. 그 대망의 모임이 바로 이틀 뒤다.
이틀 뒤에 시를 어쨌든 가져가야 할 것 같으니까 새 시를 쓸까 옛날 걸 가져갈까 생각하다가 옛날, 특히 2019년 상반기, 에 쓴 시들을 많이 읽었다. 읽으면서 당시에 같이 시를 썼던 C(지난 글에 나오는 그 C가 맞다)와 K와도 수다를 떨었다. 동시에 시와 내 사이에 대한 추억도 돌이켜 보게 되었다.
공부를 하기 싫을 때면
할 일을 미루고 브런치에 들어와 있는 지금과 유사하게, 십대 시절의 나도 공부를 하기 싫으면 딴 짓을 곧잘 했다. 라디오 듣기, 소설 읽기, 아리아나 그란데 라이브 영상 보기 등 양상이 다양했지만, 개중에는 시의 형태에 유사한 짧은 글 끄적이기도 있었다. 누가 그런 바람을 넣었는지 스스로 문학키드라고 믿고 있었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런저런 글을 쓰는 작은 공책을 만들고 인소인지 팬픽인지 소설인지 분간되지 않는 글들을 마구잡이로 썼다. 그때 당시 시는 남이 시키는 걸 하기 싫었던 그 시절, 일기장 빽빽이 글을 쓰는 건 팔이 아파서 대충 쓰던 게 다이긴 했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노래 가사를 개사하는 노트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친구들에게도 그 노트를 참 잘 보여줬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시를 잘 쓴다는 생각(은 지금도 안 하고), 적어도 시 쓰기를 좋아한다는 생각은 딱히 해 본 적 없었다. 그러다 내가 시 쓰기를 어쩌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고등학교 때다. 국어 선생님이 숙제로 사랑 시 써 오기를 내 주셨는데, 내가 내 흥에 취해 시를 세 편이나 낸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교사였는데, 상담 시간에 내 시를 칭찬하셨다. 그러면서 사회학과 지망생이던 내게, 왜 문학 관련 과에 가지 않고 사회학과에 가려 하냐고 물었다. 대학에서의 내 진로와 계속하게 된 취미(?) 생활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뒤로 난 선생님의 칭찬에 춤추는 고래가 되어 공부가 하기 싫을 때면 노트에 시를 썼다. 이따금 친구를 생각하며 시를 썼고, 쓴 시는 편지지에 옮겨서 친구에게 전해줬다. 나도 참, 그랬지만 착한 친구들이 내 시에 관심을 가져줬고 난 심지어 의뢰도 받았다. 하지만 그 시절 내가 읽은 시들은 훌륭한 교과서 시들 정도. 교과서 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요즘 시가 가져다 준 충격이 컸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2학년에 진학하면서 나는 나 자신이 문학을 얼마나 '다양하게' 사랑하는 아이인지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소설만 읽는 아이가 아니었음을 보여줘야 하기에, 난 '요즘 시집'을 읽기 시작했고 큰 충격을 경험했다. 2010년대에 출간된 시집을 읽는 일은 시집 아래의 밑줄과 빽빽한 코멘트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난해하게 다가왔다. 어떤 시들은 내가 아는 시의 형식과 내용으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공부는 계속 하기 싫으니 시 쓰기도 계속 됐지만, 그때부터 서서히 시가 뭔지 잘 모르게 됐던 것 같다. 국문과도 들어가고 현대 시 수업도 듣고 합평회도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글은 거울
시에 대한 나의 이해나 내가 쓴 시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옛날에 내가 쓴 시들을 읽어보는 건 재밌다. 상술했듯 방금 전에도 하고 오는 길이다. 흥미로운 점은 예전에 쓴 시를 읽으면 그때 내가 어디에 골몰하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는 것이다. 그야 그때의 마음은 기억으로 조금만 되짚어 보면 되는 게 아니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내 머릿속에 단순하고 아름답게 정리된 과거에 대한 정보와는 달리, 시는 보다 풍성한 맥락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혹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 나의 마음이나 당시 살아낸 일상의 광경들이 과거에 내가 남겨 놓은 시 속에는 있다.
비슷한 감정을 과거에 쓴 일기를 읽으면서도 느껴 보긴 했다. 일기를 읽으며 아주 힘들었던 어느 시절을 내가 깡그리 잊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고,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행복한 추억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가 보여주는 나는 일기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보다 알쏭달쏭하기도, 훨씬 적나라하기도 하다. 그것은 똑같은 소재일지라도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는 다른 언어로 풀어내려고 하는, 시라는 장르의 속성 덕분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더해, 시를 쓰면 날짜를 꼭 기록해 두는 편이다. 대학 이전까지는 친필로 날짜를 썼고 이후에는 노트북으로 대부분 시를 쓰니 날짜가 파일명 옆에 자동으로 남았다. 날짜를 통해 언제는 시를 자주 쓰고 언제는 쉬었는지 관찰해 봐도 재미있다. 언제 내가 요동쳤는지, (몇 안 되는) 연애 사건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언제 친구들이랑 술을 자주 마셨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인지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때 쓴 시들은 낯부끄러워서 펼쳐 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펼쳐 본 때는 적어도 2년은 된 듯하다. 대학에 와서 쓴 시들도 언젠가 그런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추억은 방울방울
2019년의 합평회는 도서관 근로장학생을 하던 시절, 딴짓을 하기 위해 다른 자료실에 갔다가 합평회를 결성한 친구에게 붙잡히면서 합류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그 모임을 왜 좋아했는지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글이 끝나는 지금도, 난 내가 그 공간에서 쓴 시가 좋았는지, 나눈 이야기가 좋았는지, 끝나고 노는 게 좋았는지, 교수님과 친구들과 함께 간 위트 앤 시니컬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전부일 수도 있지만.)
이번 합평에 가져갈지 안 가져갈지 모르는 시를 쓰면서 그 짧은 모임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와 비슷하진 않겠지만, 다시 시작한 합평에서는 또 다른 배움과 추억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