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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May 28. 2020

스물셋의 변

아이유의 노래, 그리고 갈팡질팡에 대한 옹호

아이유의 스테디셀러 <스물 셋>이 수록된 앨범 재킷. (출처: 조선일보)


  지난 1월, 나는 북미와 동아시아의 시차로 인해 1월 1일이 소거된 스물셋을 맞았다. 노래방에 같이 간 스물네살 친구가 막곡으로 스물셋을 불러달라고 했다. 난 노래를 잘 모른다며 거절했다. 실은 잘 알았는데 스물셋이 됐다고 '스물셋'을 부르는 게 너무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아이유는 토크쇼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서 새해만 되면 본인의 노래 '스물셋'의 실시간 음원 차트 순위가 올라간다고 했다. 이 노래의 가사를 이유 없이 곱씹던 어느 날,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인 고민과 가식, 대면하는 관계에 대한 불안이 노골적으로 잘 들어가 있는 노래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앨범 'Chat-Shire'는 프로듀서로서 아이유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망을 풀어놓다 못해 그것을 연료로 폭주하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다 자란 듯 지내고 싶은데 덜 자란 사람 취급도 받고 싶다. 낭만적으로 살고 싶은데 속물로서의 부귀영화도 누리고 싶다. 저 사람은 날 좋아하고 있는 게 맞는지 불안하다. 마냥 착하게 이용당하고 싶지는 않은데 사랑은 또 받고 싶다. 일관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일관성 있는, '갈팡질팡'하는 노랫말이 알쏭달쏭한 음계와 맞물려 이어지는 음악이다. 어린 나이에 각종 사건사고를 감내해 내고 일찍이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아이유 같은 사람도 이런 혼란을 그려 내는데 평범한 미물인 나는 오죽할까 싶다.

   '갈팡질팡'에 대해 생각한다. 갑자기 갈팡질팡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유 노래까지 끌고 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소서가 잘 써지지 않아서다.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돌아와서도 이런저런 사건을 겪는 동안 난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현실은 영혼으로만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그만큼 차갑고 굳건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난 내 영혼을 잘 지켜내지 못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래서 난 뭘 먹고 살지,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지, 이런 이야기다. 청소년기나 대학생활 초기에는 보이지 않던 삶의 어려움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하면서 내 희망을 타인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어려움의 근본에는 결여된 자신감과 담담한 불안이 존재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내일을 살아가려면 자소서는 써야 하는데!

  안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면을 들여다 볼 때면 주변을 살핀다. 카톡창을 열어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더니 그래도 동조와 위로가 돌아왔다. 누군가는 수고했다고 말해줬고, 누군가는 내 내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줬다. 타인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지만, 타인이 스스로의 내면을 열어 제끼고 그 속에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좋다. 난 아이유가 '스물 셋'을 쓸 때, 그런 방식으로 온 세상 스물 셋에게 동조와 위로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갈팡질팡한다. 나도 당장과 앞으로에 대한 답이 없다. 를 거리낌없이 (그것도 멋진 언어로) 표현하면서 말이다. 

  결론은 갈팡질팡이 어쩌면 보편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그렇기에 걱정은 접어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한테 하는 말이다.


+ 덧

(글을 이미 업데이트하고 갑작스럽게 추가함)

2015년 연말 가요대상에서 아이유가 부른 '스물셋'이다. 이 무대는 아이유의 처음이자 마지막 '스물셋' 공식무대였다. 당시 챗셔 앨범의 수록곡 '제제'에 관한 논란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아이유를 겨냥한 공격도 많이 있던 상황이었다. '제제'라는 곡 자체와 그에 대한 논쟁에 있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둘째 치고, 이 무대를 한 아이유가 스물셋이라니, 에 포커스를 맞춰 본다. 음...그 대단함을 생각하니 '스물셋' 속 갈팡질팡에 정말로 위안을 얻어도 되는 게 맞는가 싶기도..(내말은, 이 무대 영상은 돌아가서 자기계발하고 담도 키우라는 신호가 아닐까)

어째됐든 너무 멋있는 무대니까 여러분도 보셨으면 좋겠다. (사실 난 제대로 못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aZGaSrI0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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