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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Jul 08. 2020

자우림 노래를 그렇게도 부르기 싫어했건만...

얕고 수다스러운 덕질 2

지난 7월 3일, 자우림은 새로운 EP 'Hola'를 공개했다.

  자우림이 여름에 걸맞는 산뜻한 곡을 들고 돌아왔다. 유튜브 뮤직을 쓰면 몇몇 곡들이 때로는 늦게 업로드된다는 단점이 있다. Hola를 어제, 수록곡들은 오늘 처음 들었다. 단지 산뜻하기만 할 뿐 아니라 자우림답게 훌륭한 메시지도 담고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뭐라도 해보려고 학교 열람실로 향하면서 자우림의 새로운 곡들을 들으며 힘을 냈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열람실을 떠나기까지 애매한 시간이 남아서 내가 받은 에너지를 자우림과 김윤아를 응원하는 글로 돌려줘 보기로 한다.


※ 자우림은 덕후가 참 많은 그룹이다. 자우림에 대한 내 마음은 그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서 이 시리즈의 부제목은 '얕고 수다스러운 덕질'이다. 1탄은 여기 있다.

https://brunch.co.kr/@sleepytoronto/12 

※ 이 글은 자우림뿐만 아니라 솔로 여성 아티스트 김윤아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둘은 다르지만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다. 내 글에서도 크게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긴 하다.


김윤아 월드에 영혼을 보내게 된 계기


  아이돌만 좋아하지는 않겠다는 일념으로(난 비밀스러운... 사실 별로 안 비밀스러운 아이돌 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십 대 시절의 나는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십 대들 사이에는 '음잘알'이라면 자우림 곡을 들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자우림의 몇몇 유명한 노래들 (예컨대 '일탈', '매직카펫라이드', '미안해 널 미워해' 등)과 김윤아의 솔로 앨범을 즐겨 듣긴 했지만 음악을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사랑했던 십 대 시절의 내가 자우림과 김윤아 음악을 정말로 좋아했는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난 그때도 십 대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기 위해 김윤아의 1, 2집을 이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뭐 여하튼 내가 '봄날은 간다' 들으면서 우수에 차 있는 십 대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대학 입시가 끝난 어느 날이었다. 아니야 끝나기 전이었을까? 언니를 보러였든지 면접을 보기 위해서였든지, 무슨 연유에서인지 나는 혼자 지하철에 서 있었다. 김윤아 4집  <타인의 고통>을 난 그 지하철 안에서 처음 들었다. 지하철은 당산에서 합정으로인지 합정에서 당산으로인지 향하고 있었다. 열차가 다리 위로 진입하고 한강 풍경이 펼쳐진 순간, 4집의 두 번째 트랙인 '강' 끝부분의 기나긴 오케스트레이션이 시작되었다. 꿈과 삶과 고통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을 담은 곡들이 한강 야경과 함께 울려 퍼진 오케스트레이션 이후에 이어졌다. 김윤아가 만든 음악에 영혼을 담은 사랑을 보내게 된 건 그 순간 이후였던 것 같다.

  대학 입후 처음 간 콘서트가 김윤아 <타인의 고통> 앵콜 콘서트였다. (경제관념이 부족하던 시절의 난 아주 큰 팬심을 가진 아티스트가 아니라도 정말 좋은 음악을 들었으면 콘서트에 돈을 곧잘 쓰곤 했다.) 조곤조곤 자신의 견해를 읊다가 노래할 때는 음악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자우림의 세계에 진심을 다하게 된 시작점에는 김윤아 솔로가 있었다. 둘은 어찌 보면 완전히 다르기도 하지만 김윤아라는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자우림 혹은 김윤아의 솔로를 들을 때면 듣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뚜렷한 신념과 위로가 느껴져서 좋다. 때로 그 양상은 기괴하거나 난폭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무렴 어때.


대학 밴드 동아리 여자 보컬의 숙명


  대학교에서 밴드 동아리 하면서 자우림 노래를 연주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특히 난 보컬이었는 데다가 여자니까 자우림 노래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자잘한 공연을 제외하고 굵직한 공연은 4번을 했는데, 그러면서 세 개의 자우림 노래를 불렀다.

  처음 부른 자우림의 곡은 내 첫 합주곡이기도 했던 '매직카펫 라이드'였는데, 그 곡은 너무 많이 불러서 질리기까지 했다. '매직카펫 라이드'를 부르러 다니는 동안 난 앞으로 자우림 노래는 웬만하면 고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다음 공연에서는 자우림 곡을 한 곡도 부르지 않기에 성공했다.

  자우림 노래 부르지 않기를 결심하고 악보 사이트를 뒤지면서(오지은을 발견한 건 내 어딘가 비어 있는 음악 취향의 퍼즐 조각을 찾은 기분이긴 했지만) 까마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아니, 남자 노래는 이렇게 많은데 여자가 할만한 곡은 어쩜 이렇게 자우림밖에 없지? 악보를 찾아 떠나던 어느 밤에는 '홍대 여신' 정도로 치부되며 우리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여자 포크 가수들을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자우림과 김윤아가 커 보이기도 했다. 여성 보컬이 쉽게 평가절하되던 시기에 자우림은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참 굳건히 자리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찬리에 방영 중인 예능프로그램 <밥 블레스 유>에서 '어릴 적 김윤아 창법 안 따라 해 본 사람은 없을 거다.'라고 말하거나 '인생 언니'로 김윤아를 초대하는 모습을 보인 건 우연이 아니다. 자우림, 김윤아는 자신의 자리에서 수많은 노래 듣고 부르기 좋아하는 십 대 여자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 속엔 내가 있었고...)

  그렇게 난 그다음 공연에서는 자우림 노래를 또, 무려 두 곡이나 부르게 되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이카루스'와 '샤이닝'을 가사를 꼭꼭 씹어 가며 불렀다. (적어도 연습할 때는 그랬고 무대에서 다 틀렸다.) 마지막 공연에서 '있지'를 부르지 못한 건 큰 한으로 남아 있다. '있지'는 나의... 자우림 최애 곡이나 다름없는데.


<있지>


https://www.youtube.com/watch?v=zlpTnG7PJCs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처음 봤을 때, 난 당시 자취하던 집에 혼자 있었다. 매트리스에 누워 무심코 켠 영상을 가만히 보다가 나는 청승맞게 울어야 했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운 것은 <있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두 여자의 사랑에 관한 영화 같은 연출, 그리고 영상의 주인공이었던 음악 '있지'와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던 'over the rainbow'. 뭐 하나 나를 안 울린 게 없었다.

  그날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이제 와 새삼 생각해 본다. 힘들기로 유명한 대학교 2학년을 보냄과 동시에 페미니즘, 소수자 이슈에 한창 몰두해 있던 당시에 이 곡은 빛이었다.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뮤직비디오 <있지>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음악 '있지'의 가사는 어떤 말에든 열려 있다. "끝내 잊어버리고 말하지 못한 얘기"가 무엇인지 음악이 끝나도록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이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연대다. "우리"는 "내일 비가 내린다면" 비를 맞고,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끝을 맞기 때문이다. 비록 가사를 통해 지나간 일에 대해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음악으로 불리기 때문에 그 시절의 감정은 여전히 유효해진다.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목표한 지점까지 글을 써서 기분이 좋다. 글을 맺고 보니 내 대학 시절은 자우림과 김윤아의 노래를 부르고 듣던 시절로 요약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우림은 코로나 농가를 돕기 위해 홈쇼핑에 출연해 거봉을 팔았다. 김윤아는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한 음악을 만든다. 대학 생활이 끝나도 내 내면이 자우림, 김윤아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있지>를 찬양하다가 잊고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 자우림은 때로는 직설적으로 위로를 말하지만, 단순하 심연의 불안을 직시하게 도움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하기도 한다.

- 음악을 만드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개성있으면서도 다채롭게 변하는 김윤아의 보컬이 그들 음악의 완성도에 한 몫한다고도 생각한다. '봄날을 간다'를 부른 사람이랑 'carnival amour'를 부른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니. 믿겨지지만 믿겨지지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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