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고 수다스러운 덕질 1
안 읽어도 무방한 집필 동기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올리지 않은지 열흘이 넘었다. 그동안 교환학생도 학생이랍시고 시험공부라는 걸 했고(대충한 것 치고 잘 본 것 같아서 뿌듯하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3박4일 몬트리올-퀘벡 여행을 혼자 다녀왔다. 돌아오자마자 침대 위에 뻗은 다음 미뤄둔 과제를 하니 오후 네시. 잠시 멀어졌던 브런치 생각이 났다. 원래 몬트리올-퀘벡 여행기(아 그립다)를 올릴까 했는데 여행과 관련된 다른 종류의 기획이 생각나서 그건 얼마 후로 미루고, 오늘은 토론토에서도 이어지는 나의 덕질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 저는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이 글은 느낌 위주의 글로, 깊이 있는 글을 원하셨다면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 글이 깁니다. (사실 링크 때문에 길어 보이는 겁니다.) 이소라를 좋아하는 제 자아를 해소하기 위한 글이라 그렇습니다. 귀찮으시면 링크만 눌러서 음악만 들어 주세요...음악을 들어 주세요...
나와 이소라의 간략한 역사 (이소라님은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소라의 음악을 제대로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때다. 중학교 때 <나는 가수다>를 방송했는데, 그때는 박정현에 정신이 팔려서(박정현도 사랑한다 오늘도 박정현 노래 들었음) 이소라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가 하기 싫었고, 또래들보다 좀 달라 보이고 싶었으며, 따라서 미친듯이 취향을 넓혀 나갔다. 그 범위에 이소라가 있었고, '시시콜콜한 이이기'를 들은 나는 그 곡의 참신한 마음 아픔에 넋을 잃고 말았다. 자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애인에 대한 하소연을 전화로 친구에게 전하는 내용의 이 노래에서, 이소라는 전화 받는 친구 역할까지 1인 2역을 소화한다. 시골에 있던 고등학교의 운동장을 야자 쉬는 시간에 산책하면서 친구와 이 곡을 듣고 수능 전 감성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바람이 분다', '이제 그만' 등 곡 하나하나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이소라의 음악을 종종 접했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매우 열심히 이소라의 음악을 듣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어느 시험기간. (계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통해 98년에 방송된 '믿음' 라이브 영상을 봤다. 가뜩이나 공부를 하기 싫었던(이쯤 되면 공부는 내 은인이다) 나는 영상을 몰입해서 본 뒤, 다음과 같은 이소라의 방송 멘트를 일기장에 받아 적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내겐 너무 특별한 노래 시간입니다. 원래 써와서 이렇게 읽잖아요. 근데 오늘은 써온 게 없어요. 왜냐하면 그냥 제가 부르는 노래가 내겐 너무 특별한 노래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앨범을 내면서 너무 많은 나의 감정들을 다 써놓았기 때문에 더이상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요. 누가 물어봐도 별로 할말이 없어요. (...)"
사실 이 뒤에 이어진 멘트가 더 와닿았는데, 지금 내게 일기장도 없는 데다가 영상이 더 이상 재생되지 않기까지 해서 알아낼 수 없었다. (위의 문구는 박상영 작가가 젊은작가상 수상 소감에 인용해 둔 걸 빌어온 것이다.) 하여튼 영상 속 이소라는 방금 이별하고 온 사람처럼 말하고 노래했다. 좁은 원룸에 슬픔이 가득했고 난 있지도 않던 애인과 이별이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난 이소라의 음악을 닳도록 듣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t1ki47zUEQ
https://www.youtube.com/watch?v=Arw7iEYwFTs
이소라의 가사
이소라 음악의 특징은 대부분의 곡을 본인 스스로 작사한다는 데 있다. (직접 작곡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이소라 음악에 깔려 있는 깊은 쓸쓸함이 더욱 가까이 느껴진다. 이런 노래를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정도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당장 떠오르는 음악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Track 9'이라는 곡이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어느 아주 힘들었던 시기에 이 곡을 들었을 때, 나의 응어리진 채 언어화되지 못하고 있던 고독이 해명되는 기분이 들었다. 삶의 허무, 세상의 점 같은 내 무력감, 이유 없는(사실 아주 확실한 이유가 있는) 외로움 등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곡을 혼자 있고 싶을 때 듣곤 했다. 어느날 노래방에서 친구 하나가 이 곡을 부르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옆에서 다른 친구 하나가 이 곡을 '띵곡'으로 칭해 줬을 때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느꼈다. 역설적이게도 'Track 9'을 통해 날 힘들게 하던 고독을 코앞에서 직시했을 때야 삶에 의지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소라는 내게도,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어디선가 삶의 이유를 질문하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큰 기여를 한 셈이다.
보편적으로 이소라 하면 떠올리는 사랑노래 가사들도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이소라의 사랑 노래들은 직설적인 듯 에둘러 말한다. 아주 시적인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미묘하게 마음을 울리고 그래서 슬프다. 그런 가사들이 이소라의 첼로 같은 목소리를 만났을 때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청혼' 같은 밝은 음악들도 있지만 보통은 쓸쓸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이런 곡들을 들으면 난 괜찮다가도 강제로 우수에 잠기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QYEwSJbjgs
https://www.youtube.com/watch?v=xHDDGPlxZLU
https://www.youtube.com/watch?v=wxDPVoXZ5no
이소라의 스펙트럼
내가 이소라에 입문한 것도 발라드('시시콜콜한 이야기', '믿음')였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소라 음악을 끊는 게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소라 음악의 스펙트럼이 꽤 넓기 때문이다. 이소라는 애초에 재즈 보컬로 노래를 시작했고, 락에도 조예가 깊다. 그런 영향인지 재즈나 락으로 가득 채워진 앨범들도 있다. 특히 이소라의 락은 앞서 소개한 'track 9' 같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포크풍도 있다면, 8집에는 아주 파격적이고 헤비한 락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소라는 피쳐링에도 다양하게 참여해 왔다. 발라드 피쳐링은 물론이고(김동률 '사랑한다 말해도'), 나른한 여름 노래(코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힙합 (타블로 '집'), 심지어 무한도전 가요제에도 참여했다.
살랑살랑해지고 싶을 때도, 하드한 음악에 맞춰 운동하고 싶을 때도, 이소라는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음악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음악 하나하나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그저 링크를 걸어 두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p6tNw4N3nno
https://www.youtube.com/watch?v=oqpNbO1ORh0
https://www.youtube.com/watch?v=mb08fI5DXvE
https://www.youtube.com/watch?v=pmVVdYDuixE
좋은 노래 많이 불러 주시고 항상 최고의 가사를 써 주시는 이소라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가을에는 이소라를 들어요.
오늘의 트리비아
- 과제 끝냈고 브런치에 글도 썼으니까 운동하러 갈 거다. 퀘벡 주에서 버스도 너무 오래 타고 많이 걸었더니 하체가 제정신이 아닌 데다가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 감이 없잖아 있다.
- 왜 돈 나갈 일은 한꺼번에 생길까?
- 대중교통에서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는 토론토의 영향으로 오프라인으로 자주 듣는 곡들이 생기고 있다. 언젠가 이런 tmi 강한 글을 또 올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