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이던 어느 날, 난 곰돌이 맥주잔이 나를 반기는 곳으로 도피했다. 한 잔 하려던 맥주는 두 잔이 되었고...
종강을 했음에도 시험기간에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던 동네 카페에 와 있다. 평소 안 시키던 음료를 시키고 꾸역꾸역 대외활동 계획서를 제출한 다음 인턴 지원서를 써 보려 했다. 다행히 모집하는 언론사 인턴이 꽤 있었고 각 공고의 조회수는 엄청났다. 저 조회수대로 이 인턴직에 지원한다면 경쟁률은 거의 500:1인걸? 그렇다고 지원 안 해 볼 수는 없으니 일단 지원서 양식 파일을 내려받았다. 콘텐츠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지원동기 앞으로의 포부 등등을 버무려서 지원서를 써 보라는데 음, 머릿속에 말줄임표만이 떠 다닌다. 솔직한 마음으로 자소서를 쓴다면 다음과 같겠지.
하루빨리 직장인이 되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챙기고 싶습니다. 직장인을 하려면 스펙이 있어야 하고 그럼 인턴을 하라고들 하더라고요. 돈 주면 여러분 업무에 관심 가질게요. 뽑아줘요.
와, 어쩜 이렇게 쓰기 싫지? 그리고 난 뭘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의미 없이 인터넷 세계를 유영하다가 이곳 브런치에 정착한다.
언제부터 이런 마음으로 매사를 대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절망스럽나? 절망스럽다.. 는 표현이 어떤 때는 잘 어울리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평화로울 때는 자연스럽게도 느껴진다. 지구에 유통기한이 있다던 어느 노랫말처럼 대학생으로의 우리들도 유통기한이 있는 느낌이다. 정확히는 우리의 희망, 열정, 의지 등등에 유통기한이 있는 듯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로 하고 싶은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다니는 느낌이었다면 올해 내 마음은 어쩐지 '그래서 어떻게 될 건데?'에 가깝다. '이런저런 일들'을 이력서로 정리해봤다. 길긴 한데 어떤 고용주가 좋아할지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역병이 창궐했다.(친구 하나가 조선 후기와 비슷하다 그랬다.)
비슷한 기분에 빠져 살고 있던 어느 날, 아는 언니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광화문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스타벅스에 들어갔는데 어플이 언니의 메뉴가 31번째로 제조되고 있음을 알려줬고, 언니는 내가 여기서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 하려고 이렇게 지독한 취준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지독한 취준도 해 보지 않은 나마저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평범과 일상, 지위와 삶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팍팍하고 따라서 더러운 노력이 필요하다.
이쯤 되면 주변에 선택하는 사람이 많을 법도 한데, 생각보다 뭔가에 진출해 있는 사람은 또 별로 없다. 그게 더 오묘한 마음을 갖게 한다. 내게 질투할 대상도, 동경할 대상도 별로 없다니. 어쩌면 우리는 그저 아르바이트와 수강신청을 하면서 평생을 이렇게 살고 먹을 운명인 건 또 아닐까, 차라리 그 편이 속은 편하겠다. 질투할 대상도 동경할 대상도 없는 우리들은 식탁에 모여 앉아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기억전달자>에서처럼 우리의 삶을 분석해 진로를 정해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리포터>의 기숙사 배정 모자처럼 우리가 뭐해 먹고살지 모자가 정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 있는 모자에는 애석하게도 그런 힘이 없다. 우리의 삶을 분석하는 건 우리의 몫이며, 그것은 시작부터 우리를 무채색의 기분에 접어들게 한다.
보통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밝은 결론을 내보려고 하는데, 오늘은 그건 힘들 듯하다. 그저 이 공간에 딱히 감동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문장들을 남기는 게 성공적인 도피이긴 했다, 정도의 결론을 내려 본다. 두 시간도 채 안 남은 하루를 잘 보내고 편안한 잠에나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