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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May 21. 2020

어느 파란 하늘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며칠 전.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도 예뻤던 날, 학원 근처에서.


  서울에서 좋아하는 풍경이 새로 생겼다. 학원 알바를 가는 길, 쌍문역에서 창동역으로 향하는 지상구간에 들어서면 난 고개를 들곤 한다. 이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자칫하면 오랜 주거지역 특유의 낡은 빌딩들로 꽉 막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난 탁 트인 철길과 우이천, 멀리 서 있는 아파트 단지와 학교들을 보는 게 좋다. 때로는 내가 보는 풍경과 어울리는 음악을 듣기도 한다. 대체로 그 순간 흘러나오는 음악은 뭐가 됐든 그 순간과 어울린다고 생각은 한다. 

  4호선의 지상구간을 좋아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맑은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울이나 구름 낀 날에 환상을 가지고 있던 때가 내게 있다. 우울한 나에게 도취되던 때가 있다. 너무 괴로워하면서도 그런 내 모습을 장하게 느끼던 때가 있다. 그랬던 나를 부정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과거에 예상하지 못했듯,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내 모습이 또다시 그런 형태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됐든 몇 달 전, 나는 아주 실존적인 문제로부터 찾아왔던 필연적인 우울을 거쳤다. 그러자 난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난 근본 없는 우울을 찬양할 수 없을 것이며, 구름 낀 날보다 맑은 날에 더 밝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내게 그리운 면모가 있다. 요사이의 나는 어딘가 메말라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마련된 흰 공백에 난 아무 말도 털어놓지 못할 때가 많다. 일기를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던 날들이 있는데, 요 근래 나는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반드시 써야 하는 글이 있던 어느 날, 그날도 난 4호선 안에 있었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창동의 풍경을 보며 날 원망했다. 어떤 시간이 내게 닥쳐도, 너 자신을 지켰어야지. 

  애석하게도, 난 그 한탄을 되받아칠 언어를 찾지 못했다. 다만, 마치 마냥 우울을 찬양하던 과거를 부정하지 않듯, 과거의 내게서 본받을 점을 잃은 듯한 지금의 나도 너무 책망하지 않기로 한다. 사람의 뇌에는 가소성이 있어서 영유아기 때만큼 파격적인 수준은 아닐지라도, 성인의 뇌 역시 변화한다고 한다. 되찾고 싶은 능력이나 만들어 내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다만 그 언저리에 열심히 접근하면 되지 않을까, 속 편하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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