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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Nov 23. 2020

추운 날

버스에서 쓰는 짧은 글

언젠가 외투를 입지 않는 게 허전하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 있다. 그러나 난 외투 입기를 싫어한다. 여러 겹의 옷을 껴입으면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긴 하지만, 외투를 입으면 어쩐지 빨리 지치고 피곤해진다. 이 글도 코트 때문에 목과 어깨가 뻐근해진 버스 안에서 쓰기 시작했다.

외투 껴입는 게 사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알게 모르게 변화하는 내면은 껴입을 게 없으면 점점 허전해지고 입을만한 것들을 찾아 나선다. 목표 취향 관계 가치관 경험이 내 위에 덧씌워지는데 그런 것들이 때로는 나를 편안히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가만히 있어도 숨차고 피로하게 한다. 좋아하던 책 읽기가 더디고 똑같은 음악 속에 갇히는 내 모습을, 과거와 달리 앞날을 생각할 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따지는 나를 보면서 내가 여러겹의 못생긴 코트 속에 파묻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면 외투를 다시 입을 것이다. 외투 없이 버스에서 내리면 추울 테니까. 무겁고 피곤해도 외투를 골라 입는 맛으로 살자. 외투의 따뜻함이 주는 안락함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차가운 공기 냄새를 맡으면서.

세상이나 삶, 그 속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적절하고 다채로운 자기위안이라도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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