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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Dec 20. 2020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누군가에게'인 이유는?

김사월님과 함께하는 음악적 결산

얼마 전, 친구가 자신이 올 한 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을 소재로 글을 썼다. 애플뮤직이 통계를 내줬다고 한다. 유튜브 뮤직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썸네일이 요상해서 눌러보고 있지 않고 있었다.

으 징그러

글을 읽고 나니 내가 올 한 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도 궁금해졌다. 숫자 '20'이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이 쓰여 있는 썸네일을 그 궁금증이 눌러보게 해 줬다. 어떤 곡들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지 감도 잘 오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김사월-백예린-김사월-백예린-김사월. <로맨스>와 <Every letter I sent you>가 번갈아 등장했다. 올 하반기에 공개된 음악들(여자친구의 'Apple'이나 보아의 'Better'. 둘 다 미친 듯이 많이 듣긴 했다.)이나 한 번 들었다고 알고리즘이 억지로 틀어준 음악(더클래식의 <여우야>)이 플레이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순위 자체에 큰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해 보니까 올 한 해 새롭게 가사를 외우다시피 한 곡이 김사월의 '누군가에게' 말고 없다. 많이 듣긴 들었구나..

<로맨스> 앨범이 나의 '많이 들은 곡 순위'의 상위권을 잡아먹고 있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 앨범을 처음 제대로 접한 것은 토론토에 있던 2019년 하반기. 친구들이 하도 김사월 김사월 하는데 김사월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앨범 리스를 훑는데 '로맨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러하듯 연애를 할 때도 안 할 때도 연애 서사에 미쳐 있는 나란 사람에게 '로맨스'라는 단어를 그냥 넘기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곡은 역시 '접속'이지만, '접속'이 수록된 1집이 아닌 2집을 먼저 듣게 된 이유다.

<로맨스>의 수록곡들은 그리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듣기 좋고 편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김사월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곡들은 편안한 방식으로 사람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난 사랑을 시작했다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세상 끝까지 달렸다가 술집이 많은 골목의 바닥에 걸터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곡들이 물리적인 기복이나 기교를 이용해 날 더러 웃으라거나 울라고 종용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 음악들 중에서도 특히 '누군가에게'와 '엉엉'이 <로맨스> 앨범에서 가장 많이 들은 곡들 중 일부로 선정되어 있는 것은 놀랍지 않다. 나는 김사월이 덤덤하게 뱉어 놓는 외로움이 좋았다. 그래서 현실이 내게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순간마다 두 곡을 찾아들었던 듯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하반기에는 같은 앨범 수록곡인 '그리워해봐'를 많이 들었다. 반면, 가운데 있는 '프라하'는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사랑스러운 곡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으면 들었나 보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슷한 통계를 냈다면 감정을 짙게 표현하는 아티스트들이 더 많이 나왔을 것 같다. (이소라라거나 이소라...) 그러지 않았던 건 거리두기를 하느라 집에 박혀서 비교적 평화롭게 보낸 시간이 길었던 이유도 있을 듯하다. 올해는 한 감정에 깊숙이 빠져들기보다는 잔잔하게 다른 이들의 서사를 관조하는 게 더 어울렸다.(그야 내 서사는 꿈도 못 꾸는 한 해였으니)

이렇게 김사월의 2집을 잘 들었다 보니 3집도 많이 들었다. 3집에서는 개인적으로 '확률'과 '도망자'가 가장 좋았는데 역시나 이 둘이 3집에서 제일 많이 들은 음악으로 꼽혀 있다. 3집은 2집만큼이나 진솔하고, 2집보다는 다크한 매력이 있다.

김사월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백예린의 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앨범은 아니다. 그래도 'Popo'와 'Square'를 좋아했음을 크게 부인할 생각은 없다. 'Popo'는 특유의 간질거리는 느낌 때문에 올 상반기에 많이 들었다. 곡이 끝날 때 나오는 브라스 연주가 좋다. 'Square'는 전국민이 좋아했고 나도 그중 하나.

의외였던 점은 태연이 6위밖에 못했다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의외로 '불티'였다. 내가 '불티'를 그렇게 많이 들었나? 기억에 없다. 그러나 좋은 곡이다. 그나저나 순위에는 태연의 곡이 참 많다. 언젠가 태연에 대해 따로 글을 써야지.

그 외에는 새소년의 '난춘'과 '집에', 보아, 여자친구 등등이 20위 안에 있다. 남자 뮤지션의 곡 중에는 크러쉬가 이하이와 부른 'Tip Toe'가 상위권에 있었다. 전체 100곡 중에 9곡(크러쉬, 더클래식, 카더가든, 다니엘 시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브라운 아이드 소울, 신화(?), 비(??), 코스믹보이(이것마저 유라 때문))를 제외하고 다 여자 뮤지션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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