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지만 하고 싶은 게 없을 때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로필을 찬찬히 내려보곤 한다. 더 심심하면 추천 친구 목록도 본다. 보다 보면 왜 내 친구(추천) 목록에 존재하는지 의문인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잊고 살던 순간 한가운데로 나를 데려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나는 즐거움에 휩싸여 있기도, 곤경에서 갓 구출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준 기억에서 빠져나온 내가, 비록 실제로 내가 있던 곳은 퇴근시간대의 붐비는 지하철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의 나를 긍정할 수 있는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말이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습관이 아닌가 싶었다. 만나기는커녕 연락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내 추억을 일방적으로 덧씌우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왕 더는 나와의 연이 이어지지 않을 사람들이라면, 내가 두고두고 분개하기 만들기보다는 덕분에 기분 좋아지게 해주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게 됐다.
<요노스케 이야기>의 주인공 요코미치 요노스케(이하 요노스케)는 스쳐 지나온 인연들의 집대성과 같은 인물이다. 그는 어리숙하지만 편견이 없다. 별나지만 선량하다. 그를 떠올릴 때면 잔잔한 웃음이 난다. 영화는 요노스케가 대학생활을 하며 주변인들과 겪었던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고, 중간중간 그 인물들이 요노스케를 회상하는 장면들이 끼어든다. 그들 중 현재의 요노스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요노스케가 알게 모르게 구축해 둔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기분 좋게 이야기한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우리의 곁에서 행복을 선사했던 요노스케가 그래서 결국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를 끝내 보여주고 만다. 지하철 선로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사고사 한 35세의 사진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스무 살 요노스케의 모습과 달리 '의인'으로서 그는 영화에서 단 한 줄로 요약된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는 장면은 주인공의 계속되는 유쾌한 삶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허무감을 준다. 그럼에도 그 장면은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는 처음부터 남달랐던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 작은 기쁨을 준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사람의 선량함에 조금은 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세상을 바꿔나가는 건 대단히 훌륭한 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조금씩 모이는 여러 사람의 좋은 기운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질 수 있는 요노스케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모두의 마음속 요노스케는 우리의 생이 다할 때까지 존재한다. "그를 떠올리면 울기보다는 웃고 싶은" 요노스케는 스무 살 청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영화를 본 것은 공교롭게도 지난 주말, 6개월간의 방송국 근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때였다. 일주일 내내 영화 속의 어리숙하지만 편견 없고, 별나지만 선량한 요노스케를 생각했다. 지난 일터에서뿐만 아니라 살면서 지나온 모든 요노스케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그들의 모습과 성격은 영화와 달리 제각각이다. 그들 중에는 꾸준히 얼굴을 보며 소식을 주고받는 이들도 있고, 다시 보기는 민망할 정도로 연이 없어진 사람들도 있다. 내 곁에 있어줘서 감사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나. 이렇게 모자라고 못난 나일지라도, 당신의 요노스케가 되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내 마음이다.
덧
- 일본 드라마를 많이 보던 한때 좋아했던 요시타카 유리코가 나와서 반가웠다. 요노스케 못지않게 별나고 기분 좋아지는 캐릭터인 '쇼코'를 연기한다.
- 몇 년 전 유행했던 80년대 일본 문화(시티팝, 경양식 등등 화려한 레트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거리가 더더욱 풍성해서 재미있는 영화일 듯하다. 나도 눈과 귀가 즐거웠다.
- 위에 쓴 글의 흐름과는 별개로, 스무 살의 요노스케와 주변인들이 경험하는 삶의 결도 잘 표현된 영화다. 요노스케의 친구 카토가 요노스케에게 커밍아웃하던 밤 둘이 수박을 갈라먹던 장면, 요노스케의 첫 애인인 쇼코와 요노스케가 서로의 이름을 이어 부르던 장면 등이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