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정이 여태까지처럼 잊히지 않으려면 초장부터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아직 학교도 시작을 안 했는데 아무 이야기나 끄적여 보려고 한다. 소제목에 써 둔 대로 이 글은 내가 왜 꼭 토론토에 와야 했는지에 대한 글이다.
노스욕(North York) 이케아에서 나오는 길에 찍은 하늘. 가을의 나라답게 청명했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곧 추워진다는 사실은 믿기지가 않는다.
프롤로그(?)에 쓴 대로, 큰 도시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따라서 교환학생을 지원할 때 큰 도시 위주로 지망을 써 넣었다. 문제는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토론토, 시드니, 홍콩, 헬싱키, 바르샤바, 캘거리, 보스톤, 빈에서 똑같이 학기를 보내고 싶은데 대체 여기서 어떻게 순위를 매기느냔 말이다. (물론 상당수의 학교들은 내 애매한 토플 성적으로 인해 걸러지긴 했다.)
첫 기준이 되어 주었던 것은 해당 국가에서 사용하는 언어였다. 수업이야 교환학생은 대부분 영강을 들으니까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생활을 생각하니 언어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영미권이거나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도시들이 지망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1, 2, 3지망 후보로 선정된 학교들은 각각 시드니대, 홍콩대, 토론토대였다. 중학교 때부터 호주에 미련이 있었던 데다가 2학기 파견이라면 돌아올 때쯤 호주의 날씨가 정말 좋을 것 같았다. 홍콩은 얼핏 향락과 소비의 도시의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곳에서의 한 학기도 좋을 듯했다. 그리고 토론토는, 정말 사소하게도, 『눈먼 암살자』와 그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 때문이었다.
『눈먼 암살자』의 표지. 다 읽고 나서는 일러스트의 의미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은 사실 무슨 의미인지 잘 기억 안 난다.
『눈먼 암살자』에 대해서는 온전히 내 기준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인상깊게 읽은 책이 뭐에요?'라고 물으면 십대 시절에 읽은 책밖에 답할 수 없던 내가,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인상깊다'는 느낌을 받은 책이다. 속도감 있게 읽히지는 않지만 담담한 말투로 정곡을 찌르는 화자와 헤어지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20세기 초중반의 여성인 화자 아이리스의 서술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를 볼 때마다 간담이 서늘하거나 숨이 막히기도 했다. 결론은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소설을 완독한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제발 읽으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난 이 소설을 잊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토론토였다. 슬쩍 훑어 본 책날개에도 토론토의 어드메에서 애트우드가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토론토에 토론토대학만 있는 게 아닐 텐데 나도 모르게 애트우드가 토론토 대학교에 재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토론토에서 나고 자랐을 거라고도. 토론토에 대한 로망이 커졌고 나는 밴쿠버쪽은 쳐다도 안 보고 캐나다 학교를 지원한다면 토론토대학교를 지원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원 시기가 다가왔을 때쯤 토론토 대학교의 교환학생 선발기준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토론토대학교가 제시한 토플 writing 성적보다 1점 모자란 성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당연히 토론토대학에 지원할 수 없어졌고, 그렇게 토론토는 가보고는 싶지만 지원할 학교가 없는 도시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내 조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토론토 대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부쩍 토론토에 대한 미련이 짙어진 나는『눈먼 암살자』의 책날개를 뚫어지게 봤다. (그 무시무시한 소설의 책장은 한 번만 넘기는 걸로 충분했다. 살면서 한 번은 더 읽겠지...)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두 가지 발견했다. 하나, 애트우드는 토론토가 아닌 오타와 출신이다. 둘, 애트우드는 토론토대학에 다녔을 뿐, 그곳에 재직한 적은 없다. 애트우드가 강사로 재직했던 학교는 토론토 대학교가 아니라, 토론토 '요크' 대학교였던 것이다.
기시감이 들어서 교환교 리스트를 다시 보니 'Y'로 시작하는 요크대는 캐나다 카테고리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애트우드가 업으로 다닌 학교보다는 학생으로서 다닌 학교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데도, '애트우드가 가르쳤던 학교라니!' 같은 이상한 환상은 결국 내가 요크대를 1지망으로 지원하게 만들었다.
결론은 그러니까 모든 게 소설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트리비아
- 노스욕의 이케아에 다녀왔다. 한국 이케아와는 달리 주말인데도 여유로웠다. 카페테리아에서 할아버지들이 체스를 둘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것저것 장을 봐서 100CAD 넘게 썼다.
- 팀홀튼에서 Everything Bagle을 먹었다. 당연히 맛있었다.
- 기숙사에 처음 들어왔다. Move-in day라며 바깥이 하루종일 시끄럽다. 이런 기분은 나쁘지 않다. 학교 측에서는 기숙사 사람들과 hang-out(ㅋㅋ)하라며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기숙사 ot의 담당자는 말습관인지 'cool'을 반복했다. 시설은 비록 90년대 미국 대학교물에 나올 것 같지만, 이곳 생활이 은근히 기대가 된다.
-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n시간 전에 받은 mail box 열쇠를 잃어버린 것.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