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도권을 쥐는 것과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것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이번에 연봉 협상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
"올해는 일이 다 잘 풀렸으면 좋겠어."
위에 내가 적은 말에는 한가지의 공통점이 숨어있다. 무엇인줄 아는가? 바로,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영어의 가정법에도 이러한 말이 있지 않은가.
"I wish~" 나는 ~을 하고 싶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소망하고 희망하는 말을 담은 것인데 외국어에도 "과거에 그렇게 되었으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등의 표현들이 많은 것 같다.
하물며, 외국 문화에도 이런 소망을 담은 표현이 많은데 한국 문화는 오죽할까. 유독, 남과 비교의식도 높고 평판 관리에도 힘쓰지만, 그만큼 남을 의식하기에 정 문화, 단체 문화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에만 특히 더 발달한 정서이기에, "어떻게 되고자"하는 욕망이 크고, 그로 인해 더 잘살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를 담아 우리 모두가 예측한 시나리오대로 그저 인생의 시기 시기마다 너무 평탄하고 순탄히 잘 흘러가기만 하면 좋으련만, 왜 자꾸만 그 바램은 어긋나고, 또 부서지는 것일까.
"인생은 원래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예측 불가함으로 흐르기 때문에 삶이 더 버라이어티 하고, 뜻하지 않음에서 오는 희노애락이 인생 전반에 스며들고 현실로 발현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이미 머릿 속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애써 잊은 채, 스스로 인생의 모든 주도권을 다 쥐고 흔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까지 손을 대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바램과 기대가 어긋났는지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했지만 그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거나 관심이 없었던 기억, 또, 누군가와는 절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먼저 다가온 기억,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그 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시험을 망친 기억, 멋지게 여러 직원들 앞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발표를 끝내고 싶어서, 몇 달 전부터 새벽 날밤을 새며 연습했건만 당일날 결국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 자괴감에 빠진 날들 말이다.
어디, 이뿐이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인생은 정말 녹록치 않다. 마치 모래를 꽉 움켜쥐면 쥘수록 그 모래들은 손 틈 사이로 다 흩어져 바람에 날라가듯이, 우리는 어쩌면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무수한 일들 때문에 과도하게 불안해하고 실망해하며 또, 수없이 자책감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나의 인생은 볼품 없다며, 왜 이렇게 평범하거나 또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느냐며 한탄하고, 불평 불만으로 한 세월을 흘려 보내기도 한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자만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 놓여진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묵묵히 인내하듯 걸어가는 것. 그러다 보면 주위에서 한 둘씩 당신의 인생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허울뿐인 당신의 모습이 아닌, 진짜 당신만의 삶을 잘 다루고 있어서, 그 결과치에서 나온 본연의 여유를 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