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뺑뺑이가 시작된 초딩언니를 위한 고민
올해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원으로 도는, 일명 '뺑뺑이'를 시키고 싶지 않았고, 학교에 잘 적응하고 여유 있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남편이 1학기만 육아휴직을 했다. 그래서 미술, 피아노, 수영 등 예체능 위주로 아이가 하고 싶어 했던 수업만 찾아 듣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인근의 대형 영어학원에 등록해서 수업을 듣고 있다. 아이가 원해서 등록해 준 학원이지만, 나도 남편도 어릴수록 영어를 쉽게 접하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유치원을 다니며 엄마표로 조금씩 익혀둔 내용을 아이에게 더 확장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 2학기에 남편이 복직하게 될 상황을 대비하는 학원뺑뺑이기도 했다.
딸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은 매일 숙제가 있고 단어 시험도 2주마다 치러지니 5일 수업 중 하루라도 빠지기가 어렵다. 게다가 3월이 아닌 5월부터 중간에 끼어들어 수업을 듣게 된 터라 적응하는데도 무리가 있어 더더욱 결석은 어려운 일이었다.
문득 남편과 나는 이제 1학년인 아이가 벌써 이렇게 학원 결석이 어려워지고, 다람쥐 쳇바퀴같은 이 일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영어에 목을 매게 되는 이 상황에서 생각보다 아이가 영어수업을 잘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자 좀 더 확실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중 즐겨보던 예능프로그램을 보다가 남편은 나에게 '잠깐 이 생활을 멈추고 1년만이라도 영어권 나라에서 생활해 보는 것은 어때?'하고 말을 건넸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우린 요즘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중 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한식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맛과 멋이 어우러진 식문화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요소인데, 보다 보면 결국 영어가 소통의 도구가 됨을 깨닫는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 외국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했거나 애초에 외국생활이 길었던 배우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내뱉으며 외국인들과 영어로 소통한다. 손님으로 등장하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 비영어권 국가라고 할지라도 새로 만난 옆자리 테이블 사람들과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이 놈의 영어란. 대한민국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에서만 살아가고 영어가 필요치 않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세계가 점점 서로 가까워지고 쉽게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시점에서 영어는 필수다. 우리 둘 다 학교교육과정에서 영어를 배워왔고 지금도 크게 무리 없이 사용은 하지만, 마음 편하게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점을 늘 아쉬워하고 있던 차였다.
'당신 친구 현주가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잖아. 친구 옆에서 도움도 받고 1년만 살다오는 거 괜찮지 않겠어? 제제가 영어를 생각보다 재미있게 잘 배우고 있는데, 뭔가 이렇게 학원에서만 영어를 배우는 게 참 아쉬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입시를 향해 달려갈 텐데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나가서 숨 한 번 돌리고 시야도 넓히고 오면 좋을 것 같은데.'
현주는 5년 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내 친구다.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민 가기 직전 태어났던 아들이 벌써 6살이 되었고 미국 공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갑자기 미국이라니, 설렘과 동시에 걱정이 함께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딸아이인 제제를 위해선 정말 너무 좋은 기회지만, 현주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에 갈 수 있을지, 간다고 해도 재정마련은 어찌해야 하는지 막연해졌다.
남편은 꽤나 진지했다. 며칠 째 고민만 거듭하다가 그래도 알아나 보자 싶어 현주에게 연락을 했다.
'오, 네가 오면 나야 너무 좋지. 안 그래도 그렇게 한국에서 1년이나 2년 단기로 오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었어. 근데 비자받기가 아마 까다로울 거야. 옆에서 보니까 엄마나 아빠가 J1비자받고 아이가 동반으로 비자받아서 오는 경우들이 있더라고. Visiting Scholar라고 하던데, 한 번 잘 알아봐.'
친구가 알려준 내용을 토대로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알아보니, J1 비자는 소정의 연수기간이 종료되면 2년간 본국에 돌아가 체류하여야 하는 조건부 비자인데, 발급받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듯했다. 이 비자를 받으면 아이는 동반 조건으로 비자를 함께 받을 수 있게 되며, 따로 학비가 들지 않는 미국의 공립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다.
미국 비자 발급은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 인터넷을 뒤져 미국 유학원 중 한 곳을 찾아 연락을 했다. 1년 살이의 대략적인 예산이나 비자발급의 기본적인 사항 등을 상담받고 싶었는데, 상담 수수료(Deposit)가 10만 원이 들었다. 또한 상담을 위해 사전에 미리 구비해야 할 서류들(대학부터 학력사항, 경력 및 이력사항, 부부의 국세청소득금액증명원, 최근 10년간의 출입국기록확인서, 대학성적표 영문 등)이 많았다. 그래도 상담이나 받아보자 싶어 서류를 구비하며 알아보던 중, 내가 알아본 한 미국 유학원에서는 친구가 살고 있는 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나의 사례로 갈 수 있는 학교들이 별로 없으니 미국 서부 쪽을 추천했다.
남편은 미국 서부를 가게 된다면 미국을 가려는 목적 중 큰 부분이 하나 사라졌으니, 그러면 다른 나라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때마침 3개월 정도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호주살이를 했던 지인이 있어, 지인의 소개로 호주의 한 유학원을 추천받았다.
알아보니 호주의 경우는 미국과는 다른 상황으로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아이가 학생비자를 받아 호주의 공립학교를 다니고, 나는 가디언비자로 아이를 따라가는 식이었다. 추천받은 유학원과 상담을 하고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1년 해외살이를 할 수 있을까. 내가 육아휴직을 따라간다고 하면 벌이가 반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재정적 부담은 없을까. 재정을 마련한다고 한들 이렇게 돈을 써가며 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내가 어쩌질 못하고 고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늘 남편은 나의 중심을 잡아준다.
'유학원의 도움을 받아 가는 것이니까 혼자 하더라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어차피 현주네와 가깝게 지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굳이 미국을 선택하지 않는 게 낫겠어. 지금 미국 환율도 그렇고, 시차도 그렇고 이래저래 호주가 나아 보이는데 어때? 네가 비자를 받고 미국을 가게 되면 너의 연수 목적으로 가는 것이니 편하게 제제를 돌봐줄 상황이 안 될 수도 있고. 이왕 가기로 한 것이니 호주로 도전해 보자.'
다행히도 호주 학기는 4분기로 나누어 4 term으로 이루어지는데, 내년 1월 30일쯤 새 학년이 시작된다고 한다. 아이의 방학이 때마침 1월 초로 아예 학년이 마무리되니 어쩌면 시기적으로도 적절해 보였다. 마음을 먹고 추진해 보기로 하자, 호주도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만만치 않았다.
내년이면 내 나이도 적지 않은 나이인 마흔에 접어드는 데, 아이와 둘만 가는 이 1년 동안의 해외살이,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