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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가는 첫 걸음

아이의 여권 발급부터

by 라라미미

길지만 짧았던 1학년 제제의 여름방학이 끝이 났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첫 초등학교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한 것도 찰나 한 달간의 방학은 생각보다 금방 흘러서 계획한 것을 다 이루지는 못한 채 마무리됐다. 그래도 간간이 아빠와 함께 오전엔 도서관도 가고, 아파트 실내 체육관에 들러 배드민턴도 치고, 보드게임도 하며 나름대로 시간을 보냈다.

방학 중 오전에 한 두 가지 일과를 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어서 점심을 차려 준다. 그러고 나서 치우고 한숨 돌리면 2시부터 매일 이어지는 2시간의 영어 학원과 일주일에 두어 번 들르는 피아노, 미술(주 1회), 수영(주 1회)을 다녀온다. 그렇게 하면 어느덧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저녁 한 끼를 더 해결하면 조금씩 해야 하는 과제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상황이 이러니 길게 여유를 내서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어지는 일과를 하루하루 지워나가며 방학을 보내다 보니 더더욱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찾아보려 했던 것 같다.

호주에 관한 내용을 제제한테 물어보니, 생각보다 긍정적인 반응이어서 놀랐다. 워낙에 겁이 많고 새롭고 낯선 상황을 경계했던 아이라, 아이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 부모의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의 뜻을 따라주려 했다. 그런데 제제는 오히려 외국을 가보고 싶고 호주의 초등학교도 다녀보고 싶다고 했다. 부모와 가는 여행으로 가볍게 생각할까 싶어 ”제제야, 여행 가는 거랑은 완전히 다를 거야. 처음에 가면 말도 잘 안 통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쉽게 하기 어렵고, 우리나라랑 달라서 엄청 낯설게 느껴질 텐데 괜찮겠어? 학교에 등교하고 나면 계속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거야. 친구들과도 영어도 대화해야 하고. 제제가 이게 걱정되고 두렵고 어려울 것 같으면 꼭 안 가도 되는 거니까 그러면 꼭 엄마아빠한테 말해줘야 해.”

제제에게 한 말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되묻는 말이기도 했다. 남편 없이 나 혼자서 1년 간의 해외살이를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제는 괜찮다고,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런 제제의 생각을 듣고 난 뒤 우리는 생각을 굳히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호주를 가려고 알아보니, 1년 호주살이를 위해서는 일단 비자가 필요했다. 아이는 학생으로 가는 것이니 학생 비자가 필요하고, 나는 아이의 보호자로 가는 것이므로 가디언비자가 필요하다. 우선 비자 발급을 위해선 여러 가지 증빙 서류가 필요한데, 가장 기본적인 여권, 기본증명서(국문), 가족관계증명서(영문), 아이의 재학증명서(영문), 학교생활기록부(국문) 등이 요구된다. 당연히 영어권 국가에서 처리해야 할 서류라 영문 서류가 필요하지만, 기본증명서나 학교생활기록부는 영문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따로 번역을 해야 한다.

기본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는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또한, 아이의 공인인증서가 존재한다면 재학증명서, 생기부 같은 서류를 정부 24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발급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교 행정실을 찾아가 부모가 민원신청서를 내고 발급받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가장 기본적인 여권이 문제였는데, 가디언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엄마의 여권뿐만 아니라 함께 호주에 가지 않는 아빠의 여권이 필요한 상태였다. 물론, 당연히 아이의 여권도 필요했다. 나는 중간에 한 번 갱신을 한 상태라 유효기간이 여유가 있었고, 아이와 아빠의 여권 유효기간은 만료된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의 방학이 끝나기 전에 두 사람의 여권을 발급받기로 했다.

찾아보니 여권을 발급받아야 할 해당 구청 인근에 간단하게 여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5000원에 찍을 수 있었고, 후보정은 추가 비용 2000원만 내면 되었다. 물론, 후보정도 받았다..ㅎㅎ)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 없이 바로 사진을 찍고 인화한 사진을 들고, 구청에 들렀다. 여권은 복수여권으로 성인은 47000원, 아이는 30000원의 발급 비용이 들었고, 받은 접수증에는 약 열흘 정도의 기간 뒤의 날짜가 예상 발급 일자로 적혀있었다. 여권이 발급되면, 보호자 및 아이의 여권 스캔본도 함께 보내야 해서 수속 서류는 여권이 발급되어야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여권을 신청하고 구청 밖으로 빠져나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새로 여권이 얼른 나왔으면 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제제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밝았다. 제제는 내가 예전에 발급받아 이미 기간이 만료된 오랜 여권 속 많은 도장들을 훑어보며, 자신도 이렇게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권 속에 도장을 모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제제야, 엄마도 네가 정말 많은 나라를 돌아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혔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제제의 밝은 표정을 보며, 나도 덩달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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