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재미있는 문화차이
호주에서 두 달 가까이 살다 보니 사소한 문화차이를 직접 겪게 되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문화적 차이는 그 지역의 기후 및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로 인해 달라지는 주거문화나 식재료, 음식 등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0층부터 시작
우선, 우리와 층을 세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는 땅과 맞붙어 있는 첫 번째 층을 1층으로 세는데 이곳에서는 우리의 1층을 G(Ground Floor)층 혹은 0층으로 표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2층이 이곳에선 1층이 되는 셈이다. 처음엔 무척 헷갈렸는데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외출할 때 열쇠는 필수
또한, 호주 대부분의 가정집의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데 이게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도어락이 상용화되어 있어 어느 순간부터 열쇠를 챙기지 않는 게 일상이 되었는데, 여기서는 반드시 현관문 열쇠를 챙겨 외출을 해야 한다. 깜빡하고 열쇠를 놓고 집을 나서는 순간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워낙에 인건비가 비싼 나라여서 이렇게 문 하나 따주는 일에도 거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것처럼 찰랑거리는 열쇠꾸러미를 챙겨 들고 오늘도 집을 나선다.
우리와 다른 식기세척기 내부
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싱크대가 굉장히 작다는 점과 에어비앤비에도 작은 식기세척기가 놓여 있을 정도로 식기세척기는 필수로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할만하다. 우리는 저장용기가 크고 김치통, 밥솥 등을 씻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싱크대가 넓은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선 그런 용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바로 애벌로 간단히 씻은 후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면 되니 싱크대가 작은 것 같다.
참 식기세척기를 쓰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하나 있는데, 우리의 식기세척기에 있는 젓가락 놓는 트레이가 없다는 점이다.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포크, 숟가락 등의 도구들을 놓는 바스켓이 있지만 구멍이 뚫려 있다 보니 젓가락을 세워서 꽂게 되면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처음엔 상당히 불편했다.
쓰레기는 간단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쓰레기를 분리배출할 때 굉장히 세세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나누어 버리는 것과는 달리 여기 호주는 재활용쓰레기, 일반쓰레기 딱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해서 쓰레기를 버린다. 재활용쓰레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이류, 캔, 병, 플라스틱 이외에는 크게 분리배출하지 않는다. 일반쓰레기 재활용쓰레기에 넣지 않는 것들을 모아 버리면 되는데 여기에는 음식물도 포함된다. 아무래도 국물이 있는 음식이 거의 없어서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쓰레기를 모을 땐 우리 같은 종량제봉투가 아닌 슈퍼에서 파는 평범한 비닐봉지면 충분하다. 그 봉지에 쓰레기를 모아 담아 버리면 된다.
건식화장실
화장실이 거의 대부분 건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우리와 큰 차이점이다. 처음 살았던 에어비앤비 숙소도 그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건식이다. 그리고 다른 집 2~3군데를 놀러 가보아도 그러했다. 샤워부스가 따로 있어서 변기와 세면대가 놓인 화장실 부분에는 배수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 화장실을 청소할 때 상당히 불편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서처럼 물을 촥 끼얹어서 속 시원하게 청소를 하고 싶었지만, 배수구가 없다 보니 물이 빠질 수가 없어서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결국 청소용품이나 세제를 변기나 세면대에 뿌리고 마른걸레 등으로 닦는 방식으로 청소하고 있다.
방충망
희한하게 호주집은 대부분 방충망이 없다. 그래도 내가 구한 집은 다행히 방충망이 있어서 그게 나름 플러스 요인이었다. 서양사람들은 미관상 좋지 않아 방충망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벌레들이 자주 출몰하는 기후라면 이것도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런 나라의 경우 대부분 건조한 기후가 많아 여름에도 습하지 않다 보니 벌레가 상대적으로 적어 방충망의 필요성이 적은 것 같다. 그래도 간간히 파리나 날파리들이 눈에 띄는데 우리 집은 다행히 방충망이 있어 괜찮다.
수저통은 넣어둬
처음에 제제 도시락통을 사려고 마트를 둘러보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수저통을 찾기가 어려웠다. 겨우 하나 구해서 사두었는데, 두 달가량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보내보다 보니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호주 아이들이 싸 오는 도시락은 대부분 핑거푸드가 많아서 딱히 숟가락이나 포크 같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샌드위치, 피자, 너겟 등을 싸와서 가볍게 손으로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도 점점 그렇게 현지 도시락처럼 간단하게 싸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수저통을 잘 챙겨주지 않게 되었다.
날짜 쓰는 방식의 차이
날짜 쓰는 방식이 달라서 처음에 정말 헷갈렸다. 우리는 보통 연-월-일의 순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호주에서는 일-월-연의 순으로 날짜를 표기한다. 식품의 유통기한도 마찬가지이다.
주유소 이용하기
주유소는 거의 셀프 주유소인데 편의점을 함께 운영하고, 주유를 한 뒤에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나의 주유기 번호를 일러주면 카운터에서 체크한 후 금액을 계산할 수 있다. 처음에 낯설었던 것은 우리는 차량에 기름을 넣을 때 주유건을 꽂아 둔 뒤 손잡이를 주유 상태로 걸어둘 수 있지만, 호주는 채우고 싶을 때까지 손잡이를 계속 당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득 채우고 싶으면 끝까지 그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가득 채워졌을 때 자동으로 주유건이 멈춘다.
우산을 쓰지 않는 그들
3월 중순을 향해가는 지금까지, 멜버른에 있으면서 비가 자주 내리지는 않았다. 온다고 하더라도 잠깐 오고 그치는 정도? 그래도 가끔 정말 심하게 비가 내리는 경우도 있긴 했는데, 희한하게도 비가 올 때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폭우처럼 쏟아붓는데도 비를 맞고 하교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볼 때는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궁금해서 이유를 찾아보니 역사적으로 우산은 여성 혹은 하인들이 사용하는 물건으로 여겨져 우산을 쓰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호주 기후 특성상 비가 계속 많이 내리는 경우는 드물고, 우리나라처럼 산성비에 대한 우려가 적은 편이라 비 맞는 것을 크게 꺼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유롭다 느긋하다 느리다
이것저것 서류 신청하고 행정업무를 처리할 때도 호주의 일하는 속도가 상당히 느리구나 체감은 하고 있었는데, 주말에 브라이턴 해변가 근처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또 한 번 크게 경험했다. 그날 간 식당은 규모가 크고 식당 안에도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30~40분이면 음식이 나오겠거니 느긋하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밥때가 지나버려 허기진 제제의 투정이 시작되니 나도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아 혹시라도 주문이 잘못 들어갔나 싶어 점원에게 확인했더니 주문이 밀려 한 시간까지도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한 시간이 넘어도 음식이 나올 기미가 없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시간이 넘는 건 너무하잖아? 속으로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나보다 먼저 들어온 옆 테이블 손님들은 아직도 비어있는 테이블을 앞에 두고 여유 있게 대화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러니 이제는 내가 이상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질 때쯤 다행히 주문했던 음식이 나와 제제와 맛있게 먹을 수 있긴 했지만, 식사를 하면서도 이 느긋한 문화에 나만 겉도는 듯한 느낌이다.
아직은 짧다고 볼 수 있는 두 달간의 호주 생활 동안, 이곳이 내가 나고 자란 곳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들이 가진 어떤 부분은 큰 강점으로 보여 호의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또 어떤 부분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이 호주에서의 생활이 흥미롭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