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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몫까지 내가 맡아서

타이어 수리에서 세차까지

by 라라미미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학교를 가려고 차에 올라탔는데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턱턱 뭔가가 걸린 느낌이 들었다. 뭔가 싶어서 창문을 열고 달리는데 뒷바퀴 어디선가 계속 무언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학교 근처에 주차한 후 뒷바퀴를 살펴보니 왼쪽 뒷바퀴 중간쯤에 플라스틱으로 된 물체가 콕 박혀있었다. 제거해 보려고 손을 댔는데 영 빠질 기미가 없었다.

정체 모를 플라스틱 물체가 타이어에 박혀있다

한국에서도 내가 차를 관리하거나 챙겨본 적이 없었어서 우선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남편은 내가 보내준 사진을 보더니 우선 건드리지 말고 인근 카센터를 가서 확인을 받아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타이어의 박힌 물체 사이로 구멍이 나서 타이어의 바람이 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아이를 데리러 온 상황인 데다가 하교하고 운동장에서 여기저기 알아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거의 5시가 다 되어갔다. 이미 시간이 이렇게 되어 인근 타이어 전문점의 경우 영업 마감시간이 다 되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일단 집으로 가고 내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후 곧바로 집 근처 타이어 전문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남편도 알아보더니 내가 찾은 집 근처 지점과는 다른 지점을 한 군데 추천을 해 주었다. 또 혹시라도 밤새 물체가 박힌 부분 틈새로 공기가 새어서 바람이 빠질 수도 있으니 아침에 등교할 때 한번 잘 살펴보라고 했다.

차와 관련된 것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닌 데다 한국에서도 가보지 않았던 타이어전문점을, 말도 제대로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찾아가 보려니 괜히 심난해졌다. 부디 큰 문제가 아니길 기도하며 잠에 들었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주차장에 내려가서 차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 늦게 나온 탓에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아이를 등교시킨 후 얼른 타이어 전문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남편이 알아봐 준 곳이 추천 리뷰가 많고 펑크 난 타이어 전문점이긴 했지만, 집에서 약간 거리가 있어 우선 내가 찾아본 집 근처의 타이어 전문점을 가보기로 했다.

무작정 차를 들이밀고 전문점을 찾아갔더니 타이어수리 기사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를 막아서며 우선 다른 곳에 차를 대 놓고 카운터에 문의를 해보라고 말을 해 주었다. 나는 주변에 차를 대고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 직원에게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니 아쉽게도 오늘 하루 예약이 다 차서 내 차를 봐줄 수 없다고 했다. 가장 빠른 예약이 내일 9시 30분이니 그때로 잡아줄지를 묻기에 우선은 고민하다가 예약을 걸어놓고 나왔다.

나는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이대로 두고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혹시 몰라 남편이 알아봐 준 두 번째 타이어 전문점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연결이 되자 지금 내 상황을 말하고, 오늘 당장 수리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오늘 11시까지 오면 수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답을 받았다. 지체할 것 없이 최대한 빨리 되는 곳으로 가서 수리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시간 맞춰 남편이 알려준 타이어 전문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조금 긴장이 되었다. 한국이라면 나 같은 이런 초심자를 대상으로 가격을 더 올려 받는 경우도 있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손님이라면 더더욱 호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도착을 하니 친절해 보이는 직원이 안내를 해주고 내 차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앞에 수리할 차들이 밀려있다며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될 수 있으니 수리가 다 되면 문자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타이어 한 곳만 수리하게 되면 금액은 45불이라고 했다.

카운터 쪽에 작은 대기공간이 있긴 했지만 1시간 내내 거기서 앉아 있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알겠다고 대답을 한 뒤 인근 카페에 들러 숨을 한 번 고르고 기다리기로 했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혼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약간 긴장했던 기분이 조금 사그라들며 진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타이어 자체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금액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면 어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가볍게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수리가 완료된 차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쯤 문자로 수리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차를 찾으러 갔다. 수리가 잘 되었는지 물어보니 박힌 물체를 잘 제거했으며 나머지 타이어들은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금액을 지불하고 차를 끌고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차가 더 부드럽게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었고, 새로운 경험치가 하나 더 쌓인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제 다가오는 첫 방학 기간에 방문하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세차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고 깨끗한 공기를 자랑하는 호주의 날씨지만, 희한하게도 차에 먼지가 꽤나 잘 쌓인다.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들이 가로수로 있는 곳도 많아 길가에 주차를 하고 나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나 꽃가루 등으로도 차가 금세 더러워진다.

한 달 전쯤 주차장에 있는 세차 기계로 자동 세차를 해보긴 했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아 셀프로 세차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집 근처에 있길래 주말에 제제와 함께 찾아가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셀프 세차장과 비슷해 보였다. 셀프 세차 기계에 여러 가지 옵션들이 있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차분히 돌아보니 얼추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져간 동전 중 1달러를 기계에 넣고 비누거품이 나오는 솔에 해당하는 버튼을 누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솔에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은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1분 30초에서 2분 정도 되는 듯했다. 나는 얼른 솔을 잡아 들고 차에 거품을 묻혀 닦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버리긴 했지만 솔에 거품이 묻어 있어서 1달러로도 충분히 차의 외부를 다 닦을 수 있었다.

다양한 세차도구 옵션들

이제 물로 세척하기 위해 워시 건처럼 보이는 도구를 들고 1달러를 넣었다. 고압으로 세척할 수 있는 물이 나와 묻혀두었던 거품을 닦아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해 1달러를 추가로 넣었다.

깨끗하게 거품을 다 제거하고 나서는 세차 구역에서 앞으로 나와 진공청소기가 있는 구역으로 차를 옮긴 후, 가져간 마른걸레로 물기를 닦아 냈다. 그리고 2달러를 넣고(진공청소는 최소 2달러를 내야 한다) 차 내부에 있는 먼지들을 제거했다.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은 생각보다 좋진 않았다.)

깨끗하게 닦인 차를 보니 속이 무척 후련해졌다. 제제도 함께 도와주어 더 손쉽게 세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셀프 세차 중

한국에서는 남편에게만 맡겨두었던 이런 일들을 내가 다 맡아서 처리하려니 참으로 쉽지가 않다. 남편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함께 나누어서 했던 일들이 꽤나 많았던 것 같아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용기 내어 하나하나 새롭게 해 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그리고 옆에서 제제가 한 몫 거들어 도와주기에 해낼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또 내가 가진 생활력이 한층 레벨 업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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