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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m1이 끝나다

순식간에 지나간 week 10

by 라라미미

어느새 Term1이 마무리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시간이 굉장히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 한 2주 동안은 낯선 분위기에 제제도 나도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서성대는 느낌이 컸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제제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한국인 여자 친구가 있어 그 덕분에 낯선 학기 초를 잘 견딜 수 있어서 무척 고마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그 한국인 친구와만 어울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났다. 얼른 다른 호주 친구들도 사귀고 말이 빨리 트였으면 좋겠는데, 한국인 친구에게 의지하다가 1년을 다 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한 달 가까이도 그런 시기가 이어지자, 엄마로서 아이가 당연히 낯설어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면서도 생각보다 그 적응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나 또한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의식하지 못한 채 제제를 재촉하는 경우가 많았다.


- 오늘은 호주 친구들이랑 대화 나누어 봤어?

- 점심은 누구랑 먹었어?

- 쉽지 않겠지만, 먼저 말 걸고 친해지자고 해봐.


텀이 끝나면서 이 시기를 돌이켜보니, 나 스스로가 급한 마음으로 안달하며 아이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내가 이런 내 모습을 인지하고 반성하게 된 건, 나에게 던진 물음 때문이다.


- 나도 현지 엄마들을 사귀는 게 쉬울까?


나는 아이의 빠른 학교 적응을 도와주고 학교 생활도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학교에 학부모 자원봉사를 신청했었다. 소풍 가는 날은 제제가 아픈 바람에 함께 봉사활동에 온 엄마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수영 수업을 위한 자원봉사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엄마와 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마음먹은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자니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공통된 관심사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만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면 금세 이야깃거리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짧은 영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하기에도 힘에 부쳤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데다 나같이 단기로 온 상황에서 현지 엄마들과 친해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았던 것이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제제는 더 어려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텀이 끝나기 직전 있었던 수영 주간에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아이의 학교 생활을 살펴볼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내가 그동안 마음 졸이며 걱정했던 것보다는 아이는 훨씬 잘 적응하고 있었고, 같은 반 친구들과도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수영 수업 자원봉사(아이들 인솔을 돕는다)

이런 몇 가지 경험을 겪고 나니 엄마인 내가 문제였음을 깨닫는다. 아이가 적응할 수 있게 아이의 속도에 맞춰 충분히 기다려주고 아이를 믿었어야 했던 것이다. 나와 같은 시기를 겪었던 선배 한국 엄마들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텀2까지도 아이들은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믿고 기다려주라는 것이었다. 그들도 초반에는 나와 똑같은 감정을 겪으며 힘들어했었다고, 그 시기가 지나면 분명 좋아진다고 말이다.


텀이 끝나는 마지막 날은 우리로 따지면 방학식 같은 날이다. 우리도 방학식에 일찍 하교하는 것처럼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마지막 날 1시간 단축 수업을 하고 끝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 Assembly가 하교 시간에 맞춰 일찍 앞당겨져 1시 45분에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학급 단톡방에서 반 대표 엄마가 원하는 사람은 함께 인근 공원에서 Play date(호주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한다.)를 할테니 원하는 사람은 참여하라는 안내가 있어서 제제와 함께 하교 후 들러보기로 했다.

이 마지막 Assembly에는 방학 중에 있을 Easter Holiday를 기념하는 'School Holiday Fun Raffle'행사가 있을 예정이라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은 미리 추첨권을 구매하는 공지사항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Free dress day라 교복 대신 원하는 자유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다고 한다. 제제는 텀 1 기간 동안 방과 후 시간에 배운 댄스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어 본인이 원하는 예쁜 치마를 입고 등교했다.

그렇게 제제의 댄스 공연도 즐겁게 보고, 아쉽게 당첨되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이스터 라플도 경험하고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금방 Assembly 시간이 끝이 났다. 아이들은 모두 교실로 들어가서 본인의 물건을 챙기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하교를 했다. 나 또한 제제의 담임선생님을 만나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선생님들 덕분에 잘 적응하고 텀1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고 나서 자리를 옮겨 학교 인근 공원에서 다시 반 아이들을 만나 즐겁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 인근 공원에서 반 아이들 모두 함께한 Play date

가을이 본격적으로 찾아온 것 같은 스산하고 쌀쌀한 하루였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며 텀1을 마무리하자니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버버 하며 시작한 호주 생활인데 이렇게 3개월을 넘게 지내면서 이제는 나도 제제도 많은 것들이 익숙해졌다.

낯선 환경에서 그래도 크게 힘든 내색 없이 잘 적응해 준 아이가 무척 고맙다. 이제 다가오는 2주 방학 기간에는 친한 지인이 딸아이와 함께 놀러 오기로 했다. 시드니에서 이들을 만나 3박 4일 여행을 즐기고 멜버른으로 돌아와 남은 방학을 같이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제제도 곧 만날 친구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방학을 맞이해 본다. 텀2에는 아이의 속도를 이해하고 더 아이를 믿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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