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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갖는 힘

한층 올라간 한국에 대한 인식

by 라라미미

외국에서 한국을 대하는 분위기가 분명 10여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굵직한 세계적 행사를 개최한 나라지만, 내가 처음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갔던 2010년도만 해도 한국을 제대로 아는 외국인들이 많지 않았다. 그때 당시 새롭게 만난 외국인들과 통성명을 하며 우리의 출신국가를 설명할 때, 'North Korea, or South Korea?'로 되묻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난 올해, 아이와 함께 호주에서 생활을 하면서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놀랄 때가 많다. 호주의 다른 도시(시드니, 브리즈번 등)에 비하면 이곳 멜버른에는 한국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시내 곳곳엔 한국 식당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길을 걷다가 들리는 한국어 노래 가사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고, 시내 넓은 광장에선 젊은 사람들이 K-Pop노래 반주에 맞춰 댄스메들리 챌린지를 하는 모습도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번, 아이와 함께 아이반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아빠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이 아빠는 평소영화에 관심이 많은지 나에게 한국영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최근 개봉작이었던 'Past Lives'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냐며,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사실 그 영화의 정보만 대강 알고 있었을 뿐 제대로 영화를 보진 않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 없어 내심 아쉬웠었다. 그러고 얼마 후에 새롭게 친해진 아이반 친구 엄마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엄마도 'Past Lives'를 알고 있었다. 호평을 받은 영화인 것은 알고 있긴 했지만, 어떤 영화이길래 이렇게 외국인들이 먼저 추천을 해주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뒤늦게서야 해당 영화를 찾아보고 여운이 오래 남아 영화와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까지 찾아보았다.


최근 한국 드라마 중에 가장 성공한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 '오징어게임'일 것이다. 나도 시즌1과 시즌2를 재미있게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이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파트인 시즌3가 얼마 전 6월 말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공개되기 전부터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드라마가 올라오는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오히려 나보다도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무척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낯설게도 느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 우리와 담벼락을 공유하고 있는 사립초등학교가 있는데, 어느 날 어디선가 낯익은 소리가 들려서 창밖을 내다보니 옆 학교 초등학생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들리는 이 익숙한 멜로디의 한국어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난 방학기간 'K-Pop Demon Hunters'라는 영화가 넷플릭스로 전 세계 공개되었는데, 처음엔 케이팝, 아이돌을 소재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하며 그다지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반응이 생각보다 좋고 순위에도 계속 올라와 있어 아이와 함께 보기로 했다. 아이는 평소 케이팝에 워낙 관심이 많은 여아여서인지 쉽게 몰입하며 영화 내용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완성도도 높고 영화 속 노래들이 매력적으로 들려 재미있게 감상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영화 속 OST를 반복해서 듣고 있고, 영화 속 장면들을 다시 N차 관람 중이다. 제제 같은 한국 친구들만 이러는가 싶었는데, 최근 아이반 친구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들의 아이들도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며 그들이 먼저 영화 이야기를 꺼내서 놀랐다. 벌써 몇 번씩 영화를 보았다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이미 노래는 알고 있어 매번 틀어달라 성화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영상매체뿐 아니라 소설 분야에서도 이런 흐름을 느낄 수 있는데,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영어로 번역되어 인근 공립 도서관에서 'most wanted'라는 인기 대출 도서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어 반가웠다. 그 외에도 김지윤 작가의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이란 소설 또한 'Yeonnam-dong's Smiley Laundromat'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인기대출 도서에 자리 잡고 있어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한국문화를 친근하게 여기고 K-콘텐츠가 사랑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예전에 비해 훨씬 수월해졌음을 느낀다. 새로운 외국 친구들과 처음 대화를 나눌 때도 나의 출신 국가를 밝히면 호감을 갖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쉽게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문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2025년 현재 호주 멜버른에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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