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 한 번 찾아오는 학교의 큰 행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번 텀에 무척 큰 행사가 예고되어 있었다.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Production이라는 이름의 행사인데, 학교 차원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뮤지컬 공연으로 전교생이 모두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학예회'와 비슷하지만, 규모나 전문성 면에서 훨씬 체계적이고 중요한 학교 활동으로 여겨진다. 단순히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조명, 음향, 소품 등)에도 학생들이 참여한다.
이 프로덕션 공연은 빅토리아 주에 있는 대부분의 공립학교에서 2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것으로 해당 공연의 스크립트 및 저작권을 교육청 차원에서 구입하여 학교들이 함께 공유하고 학생들과 함께 공연을 만든다. 학생들은 이를 통하여 예술적 재능을 계발하고 팀워크와 리더십을 배우며, 학교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는 활동이라 볼 수 있다. 매번 다른 이야기로 공연이 제작되는데, 올해 이야기는 ‘마다가스카‘였다. 이미 2005년에 영화로 개봉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이야기로, 얼마 전 제제도 이번 공연을 계기로 나와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지난 텀부터 이 공연에 대한 공지가 있었는데 어떻게 전교생이 한 무대에 다 올라갈지, 무대의상이나 공연 소품 등은 어떻게 제작하는지 세세한 내용은 없어 궁금했다. 그렇게 텀 3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덕션 공연 티켓을 판매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 공연은 인근 High school 강당을 대관하여 3일에 걸쳐 진행되고, 보통 학년별로 3개 학급이 있어서 하루에 1 학급씩 나누어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아이의 학급은 첫째 날 공연을 한다고 되어 있어 나는 해당날짜 공연 티켓을 구입해야 했다. 공연 티켓은 25달러로 가족당 2개까지 티켓 구매가 가능하다.
마다가스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이야기에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비중이 큰 순서부터 얼룩말(Marty), 사자(Alex), 하마(Gloria), 기린(Melman)이 등장한다. 이런 주인공급 역할은 5학년과 6학년 학생들이 맡아서 3일 내내 무대에 서는데, 그런 역할 뒤에서 장면마다 학년별, 학급별로 나와 함께 노래에 맞춰 율동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공연 2주 전쯤, 학년별로 지정된 공연 복장을 학교로 준비하여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공지사항이 있었다. 아이가 해당된 학년은 검은색 긴팔 상의, 검은 바지, 흰 운동화로 모두 로고가 없는 것을 준비해 달라고 되어 있었다. 다행히 아이가 갖고 있는 옷 중에 때마침 해당되는 복장과 운동화가 있어서 학교로 보냈다. 이 복장은 드레스 리허설 때 직접 입고 리허설 공연을 한 뒤 공연 전날 학부모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해당 학급 공연 당일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델러 온 후, 아이를 교복에서 공연 복장으로 갈아입혀 4시 45분까지 공연장으로 데려다주어야 했다. 그리고 6시에 시작하는 공연은 3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하니 학부모들은 그 시간에 맞춰 공연장으로 갈 수 있었다.
무언가 학부모로서 챙겨야 할 것이 굉장히 많은 데다 아이를 하교 때 찾았다가 다시 공연장으로 데려다주는 등 동선이 복잡하긴 했지만, 우선 공지된 대로 해보기로 했다. 공연 당일, 저녁 먹일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 대충 먹일 수 있는 간단한 간식과 공연 복장을 챙겨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집이 학교 근처가 아니라 집에 다시 갔다가 공연장에 가기엔 시간이 빠듯해서 인근 도서관으로 차를 옮겨 간식도 먹이고 공연 복장으로도 갈아입혔다. 시간 맞춰 공연장으로 가니 이미 오늘 공연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공연장 입구가 무척 복잡했다. 나는 아이를 공연장에 데려다주고 잠깐 차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공연 시작 30분 전쯤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 내부 로비에 가보니 이미 도착한 학부모들이 있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공연을 보러 온 학부모들로 로비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장 안으로 입장이 시작되고, 어느새 입장하려는 학부모들로 길게 줄이 세워졌다. 나는 사전에 구매한 티켓을 확인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앞자리 쪽에 자리가 남아 있어서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야기는 영화 내용과 거의 똑같았다. 뉴욕 한복판에 위치한 동물원에서 지내던 얼룩말, 사자, 하마, 기린이 야생으로 떠나고 싶어 동물원을 탈출하며 겪는 이야기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주인공 학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이 뛰어나 놀랐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프렙(7살)부터 6학년까지 해당되는 역할에 맞게 단체로 나와 연습한 율동을 보여주었다. 프렙 친구들은 나와서 자신들의 부모들을 찾았는지 공연을 하다 중간에 손인사를 보내주는 등 예상 못 한 행동들을 선보여 무척 귀여웠다. 아이가 속한 2학년 친구들은 펭귄 복장으로 나와 주인공 언니오빠들과 함께 율동을 하는데, 그동안 연습하며 집에서 잠깐씩 보여주던 동작들을 무대 위에서 제대로 선보이는 모습에 괜히 뿌듯해졌다. 1시간 남짓의 공연이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끝나버리고 마지막 커튼콜 공연이 이어졌다. 주제곡 'Move it move it'에 맞추어 학년 별로 나와 인사를 했는데, 마지막 순서로 주인공들이 인사를 하며 무대는 막을 내렸다.
이 전체 이야기 속에 전교생이 녹아들어 하나의 뮤지컬 무대를 완성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선생님들이 얼마나 애쓰며 지도했을지 눈에 보여 선생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도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다른 선배학년들도 만나 교류를 하고 이 학교의 일원으로서 함께 무대를 완성해서인지 학교에 대한 소속감, 애교심도 드는 것 같았다.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이 모습을 저장하지 못해서 아쉬웠다.(학교 자체에서 영상을 제작하여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학교에서 이런 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국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했을 때 따라올 수 있는 문제점도 함께 떠올라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런 무대를 하려면 필요한 소품, 장비 등에 필요한 예산이 꽤나 많이 들 것 같아 보였고, 주인공을 선정했을 때 불거질 수 있는 공정성, 형평성 문제도 떠올랐다. 여기서는 가족별로 티켓 구매 개수에 제한을 두어 공연을 관람하는 인원수를 조절할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라면 티켓을 파는 것부터가 어려울 수 있을 터였다. 이렇듯 행사를 진행하면서 따라올 여러 고비들이 떠올라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1년만 오기로 했던 호주살이인데 그래도 운이 좋게 2년에 한 번 찾아오는 활동까지 경험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아이도 즐겁게 참여한 것 같아 뿌듯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