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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만 있는 스포츠 종목은?

AFL 경기 관람기

by 라라미미

이 호주라는 나라에서 반년 넘게 살다 보니 이곳 사람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스포츠를 사랑하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멜버른 사람들이 열광하는 호주 풋볼 리그 Australian Football League는 호주만의 독특한 스포츠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종목이다. 알아보니 이 AFL은 호주, 특히나 이 빅토리아 주의 특별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빅토리아 주에서 크리켓이 여름철 스포츠로 인기를 끌었으나 겨울 동안 선수들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스포츠가 필요했고, 당시 유명한 크리켓 선수가 ’풋볼 클럽‘을 만들고 게임을 시작한 것이 초기 형태의 AFL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18개의 팀이 리그를 이루어 경기를 진행하고 있고 대부분은 이 빅토리아 주에 있는 지역팀이지만, 호주 다른 주에서도 참여하는 팀들이 있다.


각 팀은 18명의 선수들로 이뤄져 경기를 치른다. 오블(Oval)이라는 타원형 형태의 독특한 잔디구장에서 경기가 진행되고, 경기장 양 끝에는 4개의 골 포스트가 있는데 가운데 2개가 양 끝 2개보다 높이가 훨씬 높아서 이 가운데 골포스트사이로 공이 지나가면 골 Goal로 인정되어 6점을 득점하게 된다. 공이 중앙 골 포스트와 바깥쪽 포스트 사이로 통과하거나 포스트를 맞고 튕기면 1점을 얻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세세한 규칙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을 잡고 뛰어다니다가 패스를 하고 태클을 해서 공을 뺏고, 그러다가 골을 넣으면 열광하는 어쩌면 굉장히 원초적인 스포츠라 볼 수 있다. 총 20분씩 4 쿼터로 경기가 진행되고 1쿼터와 2쿼터 사이, 3쿼터와 4쿼터 사이에는 약 6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있고 2쿼터와 3쿼터 사이를 하프타임이라고 해서 약 2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두 달 전쯤 제제와 기차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명한 AFL경기가 있는지 들르는 역마다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거나 머플러를 걸치고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가족단위의 팬부터 연인, 친구 등 다양한 관계의 무리들은 물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 같은 어린아이부터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그때 당시엔 이 종목에 관심이 없을 때라 정말 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포츠구나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렇게 많은 멜버른 사람들이 열광하고 좋아하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제제의 방학기간 동안 AFL에서 'Kids Go Free'라는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인 입장료(단, General Admission에 한함)를 내면 아이 1명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행사였다. 게다가 멜버른 크리켓 구장으로 유명한 MCG Melbourne Cricket Ground 내부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가볼 만한 경기가 있는지 알아보니 때마침 개학하기 전 일요일 오후 3시 15분에 시작하는 Collingwood와 Fremantle의 경기가 있어 한 번 보러 가기로 했다. 다른 팀들의 경기는 거의 대부분 저녁 7시 혹은 8시쯤 시작하다 보니 아이와 관람하기엔 시간이 늦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미리 MCG내부도 구경하고 주변 분위기도 느낄 겸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경기 시작까지는 아직 한 시간가량이 남았는데도 이미 입장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꽤 있었고, 경기장 주변도 시끌벅적 들떠 있었다. 경기장 외부 및 내부에 팬들을 위한 다양한 굿즈를 파는 상점이 있었는데, 제제는 콜링우드 팀의 색깔인 검은색과 하얀색의 조합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팀을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통 현지인들은 자신들의 살고 있는 지역팀을 응원하거나 가족들이 함께 응원하는 팀을 따라가는데 우리 같은 이방인들의 경우 유니폼 색깔이나 그 팀을 대표하는 동물(캥거루, 고양이, 사자, 매, 까치 등)의 선호도에 따라 응원하는 팀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머플러하나 정도는 들고 경기를 관람해야 아이도 더 몰입하고 재미를 느낄 것 같아 상점에 들어가서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머플러를 골라 구입했다.


그렇게 나와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구경하다 보니 경기장 옆 한쪽 잔디밭에서 아이들을 위한 PIES FAN Zone이 설치되어 다양한 체험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경기 시작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아이와 함께 플레이존으로 들어갔다. 에어바운스 미끄럼틀도 타고 보드게임도 해보고, Collingwood팀의 마스코트인 Magpie(까치)와도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30분쯤 시간을 보냈을까 이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린 팬들을 위해 설치된 PIES FAN ZONE

내가 예매한 티켓은 지정좌석티켓이 아닌 그냥 일반 입장권이어서 가장 꼭대기 층에 배치된 일반입장권 구역 중 마음에 드는 좌석을 골라 앉는 선착순 티켓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경기장이라 그런지 입장 절차가 생각보단 까다로웠다. 가져간 가방 속에 반입 금지 물건(알코올 종류, 셀카봉 등도 금지 물건 중 하나다.)이 있는지 가방검사가 있었고, 예매한 티켓 바코드를 이용하여 지하철 개찰구 같은 곳을 통과해야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제제는 따로 바코드가 없어서 내 것만 찍었더니 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했다. 직원에게 문의해서 함께 입장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무료 입장이어도 따로 바코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거의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라 그런지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일반 입장권은 Level4로 올라가 일정 구역에 한하여 입장이 가능했다. 가장 높은 층에 올라와 경기장을 내려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일반 좌석 중 경기장이 잘 보이는 통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져온 간식을 먹으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규칙도 잘 모르는 채로 그 분위기만 느껴볼 겸 온 첫 Footy 경기(이곳 사람들은 이 종목을 이렇게 부른다.)인데도 꽉 들어찬 관중들의 흥분과 열기에 나도 모르게 녹아들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빈 좌석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좌석 대부분이 관중들로 채워졌다. 참고로 이날 공식집계에 따르면 62000여 명의 관중이 경기를 보러 왔다고 한다.

엄청난 규모의 MCG

이 MCG는 Collingwood팀의 홈구장으로 거의 대부분의 관중들이 이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현재 리그 1위를 하고 있는 팀답게 경기 초반을 이끌고 갔다. 경기를 잘 몰라도 골을 넣을 때마다 관중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Collingwood가 더 잘하는 팀이어서인지 경기 초반엔 계속 리드해 나가며 경기가 이어졌고 서로 번갈아 계속 득점을 해서 재미있었다. 그러다 경기 중후반부터는 골이 잘 안 터지고 경기가 늘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지루해졌다. 평소보단 따뜻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야외에서 계속 경기를 관람하다 보니 해가 지면서 점점 더 쌀쌀해지길래 아이에게 이제 그냥 집으로 갈까 물었더니 아이는 경기 결과를 알고 싶다며 끝까지 경기를 보겠다고 말했다. 4쿼터쯤 됐을 때 계속 지고 있던 상대팀 Fremantle이 연속으로 득점을 하면서 어느새 동점까지 따라붙었다. 경기가 거의 끝날 때쯤 결국 득점을 한 번 더 해서 1점 차로 역전이 되자 경기장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종료 직전이라 그 1점 차를 다시 뒤집지 못하고 Fremantle이 이기자 관중석 곳곳에 작은 무리로 앉아있던 Fremantle의 팬들만 신이 나 소리를 질렀다. 제제도 본인이 응원하기로 한 팀이 아깝게 지자 조금은 아쉬워했다. 경기장 밖을 빠져나가려는 수만 명의 사람들 틈바구니에 휩쓸려 나가는데 어떤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 져서 분한 마음에 그러는 듯보였다.

경기 관람 후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와도 질서있게 퇴장할 수 있었다.

처음 보러 간 경기인데도 경기 자체가 재미있게 진행되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즐겁게 경기를 관람하고 나온 것 같다. 아직 확실히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왜 이곳 사람들이 이 경기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이도 재미있었는지 또 다른 경기도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AFL은 8월 말에 정규시즌이 마무리되고 9월에 정규시즌 상위 8팀이 진출하는 파이널시리즈까지 펼쳐지면 9월 말쯤 시즌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그전에 아이와 한번 더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봐야겠다. 정말 진한 호주 문화를 하나 경험해 본 것 같아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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