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 or Treat!
10월 초쯤, 아이 반 친구엄마에게 할로윈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 자신들의 집을 리모델링하는 중인데 이제 공사가 다 끝나 집들이 겸 할로윈 파티를 가지려고 하니 시간 되면 놀라오라는 내용이었다. 파티는 10월 31일 금요일 할로윈 당일로, 학교 끝나고 4시 반부터 6시까지 친구네 집 주변에서 Trick or Treat을 하고 6시부터는 자신들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혹시 몰라 작년에 입었던 아이의 할로윈 코스튬을 챙겨 왔는데 크게 쓸모 있진 않을 듯하다. 얼마 전 시청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에 꽂혀 해당 영화의 주인공인 '루미'의 옷을 입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찾아보니 '알리'라는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를 하길래 주문을 해두었다.(주문은 거의 한 달 전쯤 했는데도 중간에 배송 이슈로 주문이 취소가 되는 바람에 행사 직전 가까스로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엄마들도 코스튬을 입고 오라는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파티 호스트인 엄마뿐만 아니라 초대받은 다른 외국인 엄마들도 이런 코스튬에 진심이었다. 아이들보다도 본인들이 어떤 코스튬을 입을지 정하고 파티를 계획하는 모습이 진정으로 할로윈을 즐기는 모습이어서 놀랐다. 초대한 엄마는 걱정하는 나에게 넌지시 '꼭 특별한 복장을 입을 필요는 없으니 부담 갖지 마.'라고 살짝 말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퀸빅토리아 마켓에서 케데헌 영화 캐릭터들이 인쇄된 티셔츠를 파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에게 보조를 맞춰 매니저인 격으로 이 티셔츠를 구매해서 입고 가기로 했다.
할로윈 당일은 금요일이라 학교 수업이 끝날 때쯤 코스튬과 사탕바구니를 챙겨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그리고 가져간 옷으로 바꿔 입힌 후, 약속 시간에 맞춰 친구집으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친구들이 초대받은 모양인지 이미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친구집 앞마당에 모여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아이들이 다 모이자, 초대한 엄마를 필두로 함께 줄을 서서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미 할로윈 장식으로 꾸며놓은 집들이 꽤 많았다. 아이들이 그렇게 꾸며놓은 집으로 들어가 노크를 하자 집주인은 미리 준비한 간식들을 가지고 나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또 하나씩 가져갈 수 있도록 간식바구니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집도 있었다. 동네를 걸어 다니다가 우리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집집마다 꾸며놓은 장식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돌았을까, 다리가 조금씩 아파질 무렵쯤 다시 친구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 대충 알고 있었던 할로윈의 Trick or Treat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지역 Council(우리로 따지면 시청 같은 행정센터)에서 주요 상권별로 Trick or Treat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로윈 다음 날인 11월 1일 토요일, 학교 근처에 위치한 큰 오거리 중심 상권의 가게들이 아이들에게 사탕, 초콜릿 등을 나눠준다는 것이다. 그 많은 아이들에게 공짜로 간식들을 나눠주는 게 가능한가, 간식값이 만만치 않게 들지 않을까 싶어 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알고 보니 Council에서 간식을 지원해주기도 하고(물론, 그것으로는 양이 부족해서 상점 주인들이 추가로 더 구매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어린이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있어 그런 부모들에게 지역 상권을 홍보하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로 정해져 있어 아이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코스튬을 입은 후 학교 근처로 향했다. 유난히 맑고 화창한 날씨에 온도도 전날보다 높아 조금은 덥게 느껴졌다. 1시까지 시간 맞춰 갔는데 이미 우리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있었다. 상권 중심에 위치한 Court house를 유령의 집처럼 꾸며놓았다고 해서 우선 그곳부터 가보기로 했다. 어두운 조명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는 실내를 구경하고 있자니 흡사 어느 테마파크 안에 있는 유령의 집에 온 것 같았다. 원래 이런 분위기를 썩 좋아하지 않은 아이인데도 같은 반 친구와 함께 구경하니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길거리 곳곳에는 각종 캐릭터로 분장한 어른들도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말레피센트 등 같은 전통적인 유명 캐릭터 복장부터 최근 유행하고 있는 케이팝 데몬헌터스들의 주인공 루미와 미라까지. 그렇게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하도 걷다 보니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해서 아이와 이 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 평소에 ‘왜 이런 코스튬을 입고 몸에도 좋지 않은 간식들을 나눠먹는 것일까’하는, 할로윈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정적인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과 동네에 위치한 집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평소 가던 가게에 들어가 사탕을 얻기도 하며 이 행사를 함께 즐기다 보니 마치 어느 지역 축제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며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로윈을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는 계절 속에서 맞이하는 느낌이 또 색다르다. 잔뜩 받아온 사탕과 초콜릿을 아이와 나눠먹으며 하루를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