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이 고마운 작별이 되기까지

마지막 플레이데이트, 그리고 선생님과의 마지막 인사

by 라라미미

호주에서 1년 살이를 처음 시작했을 땐 1년이 언제 다 지나갈까, 막연하게만 느껴졌는데 어느새 텀4의 마지막 등교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학년말이 되면 아쉬움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며 들뜬 분위기가 느껴지곤 한다. 이곳 호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평범하게 지내던 일상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늘 등교하면 만날 수 있던 제제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게다가 호주에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제제는 이제야 적응이 온전히 끝났는지 반 친구들과도 굉장히 잘 지내고 영어로 대화하는 것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용기가 생겨 제제가 좋아하는 반 친구들 엄마 몇몇에게 우리 집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하자고 연락을 돌렸다.


사실 그동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좁기도 하고, 학교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살고 있어 학교 친구들을 초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초대한다고 해도 이러한 이유로 썩 반기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엄마들과 더 깊이 교류를 하게 되면서 이들은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도 요즘 들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게 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제제 친구들 중 몇몇을 초대해 우리 집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초대하기로 한 친구는 제제와 같은 반인 '엘라'와 '크리스타'라는 친구였는데, 둘 다 부모님이 일을 하다 보니 내가 플레이데이트를 요청했을 때 무척 반가운 느낌으로 초대에 응해주었다.(각각 다른 날 초대했던 1:1 플레이데이트였다.) 내가 하교 때 아이들을 함께 픽업해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기로 하고, 놀다 보면 배가 고플 테니 저녁을 해주기로 했다. 저녁까지 챙겨준다니 아이 엄마들은 정말 고마워했는데 어차피 나에게는 제제의 저녁도 챙겨주는 김에 해주는 일이라 부담스럽지 않았다. 대부분의 외국 아이들이 떡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저녁으로는 간단히 떡국을 끓여주기로 했다. 여러 종류의 알레르기가 많아 피해야 할 식재료들이 많은 외국 아이들에게도 쌀로 만든 떡은 비교적 안전한 메뉴에 속했다.

즐거운 플레이데이트 그리고 떡국


내가 학교에서 제제와 친구를 픽업하고 집으로 오는 차에서부터 아이들은 조잘조잘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집에 오자 나는 미리 마트에서 사둔 여러 가지 만들기 세트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우리 집은 장난감이나 놀잇감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잇감을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색칠을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만들기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미리 만들어 둔 소고기 육수에 떡국을 만들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아이들에게 떡국을 대접했다. 내심 잘 먹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주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도 한참을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자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렇게 잘 노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엄마들에게 연락을 해볼걸 하는 생각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일 년을 돌이켜보니 제제가 정말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 같다. 일 년밖에 있지 않는 이 호주에서 만난 제제의 담임선생님은 누구보다 밝은 에너지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분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누구에게나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었다. 아직도 제제가 처음 등교했던 날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제제못지않게 긴장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온 내가 교실로 제제를 데려다주며 바짝 얼어 있을 때, 선생님을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는 잘 적응할 거예요. 제가 옆에서 잘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밝은 얼굴로 이야기해 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처럼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학기 중간에 제제가 친구들과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상담을 요청하면 언제나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더 아이를 챙겨주시던 선생님의 모습도 눈에 생생하다. 이런 분을 만난 건 제제에게도 나에게도 커다란 행운이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나는 한국에서 사 온 화장품과 마스크팩을 예쁜 쇼핑백에 넣어 마지막 하굣길에 만난 선생님께 전달해 드렸다. '어머,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내일부턴 예쁘고 광나는 피부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흥분되네요! 한국인들처럼 말이에요!'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니 선물을 드리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학교건물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아쉬운 마음을 담아 진한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그동안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고, 아이를 등교시키고 다시 데리러 가는 일상이 마냥 즐겁고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상 끝이라고 생각하니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 학교가 이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이도 아직은 얼떨떨한 마음인지 끝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제제에게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 이렇게 따뜻한 인연들로 일 년을 채울 수 있어 감사하다. 나도 제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 방과 후 활동 정리하기